교정 교열은 편집자 주요 업무
좌중을 압도한 실패담 사례도
오자 찾아내긴 여전히 어려워
좌중을 압도한 실패담 사례도
오자 찾아내긴 여전히 어려워
세상에는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인쇄 일과 혼동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저자도 아니고 디자이너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책 출간의 전 과정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책의 전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요즘 편집자의 업무와 철학을 담은 책들이 자주 출간된다. 이런 책들이 반가운 것은 편집자에 대한 이해를 세상에 더 잘 구할 수 있고, 책을 둘러싼 세계를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편집 후기’는 편집자로서 사는 즐거움과 곤혹스러움을 문학의 차원으로 기술한 책이다. 책을 다룬다는 점에서 편집자를 교양인으로 미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전혀 그러지 않았다. 출판업계의 노동 조건 등에 대해서도 자조적 목소리보다 냉철한 목소리를 냈다. ‘책을 좋아하는 일이 어떻게 편집자로 살아가게 하는가’와 같은 삶의 이야기가 실감났다.
저자가 말한 편집자의 주요 업무인 교정에 대한 대목을 보자. “출판계에서는 원고를 고치고 바로잡고 다듬는 일을 한데 묶어 교정 교열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지 않는 편집자란 없다. 현재는 하지 않는 편집자도 과거에는 했다. 이것은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다. 제조의 기초 공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어지간히 잘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지간히 잘하지 못하면 대번에 눈에 드러난다. 편집자에게 이 일은 잘해야 본전이다.”
저자가 원고를 쓰지만 그 원고를 매만져 책으로 만드는 것은 편집자다. 매만진다는 업계 용어는 주어진 원고에 대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바로잡는 것을 시작으로 더 선명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수정하거나 팩트 체크하는 것을 통틀어 일컫는다.
세상에 완벽한 원고란 드물다. 아니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원고를 쓴 저자가 해당 분야 전문가이든 뛰어난 창작력을 발휘한 작가든, 원고의 어떤 부분에는 편집자라고 하는 직업인이 찾아낼 수 있는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의 권위는 있어도 원고의 권위란 따로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뛰어난 편집자라면 원고의 장점을 살리면서 약점이 될 만한 점을 수정할 것이다. 미숙한 편집자라면 무엇을 수정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원고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편집자가 나 홀로 수정하면 끝나는 문제는 물론 아니다. 저자 허락이 있어야 한다. 독자는 편집자의 책에 대한 기여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편집자의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현상은 오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편집자를 비판한다. 편집자의 일은 정확히 모르지만 오자는 편집자의 탓이란 것을 세상이 알아준다니 아이러니다. 교정 교열을 오래 본 편집 경력자도 오자를 찾아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자신의 눈이 분명히 훑고 지나간 대목인데도 책이 나온 후에 발견되는 오자는 절망감을 준다. 결정적인 오자는 책을 회수해 어떻게든 바로잡는다. 문맥상 오자라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도라면 다음 쇄에 반영해 수정한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중쇄를 더욱 희망한다. 독자들이 많이 읽어줄수록 자신의 교정 과오가 흐릿해진달까.
며칠 전 한 모임에서 편집자들은 교정 교열의 실패담을 늘어놓았다. 좌중을 압도한 사례는 ‘작가 여보’였다. 여보인가 당신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문학책 말미에 실린 해당 작가의 연보는 보통 본문 활자 크기보다 작다. 편집자는 그 작은 글씨에 눈을 맞추며 맹렬하게 교정 교열을 봤다. 문제는 해당 페이지에서 가장 큰 활자인 제목을 놓친 것이다. 그래서 ‘작가 연보’는 ‘작가 여보’가 됐다. 모임의 편집자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박장대소했다.
편집자는 자신이 까다로울수록 좋은 책이 나오고 세상은 조금 더 정확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오늘도 편집자는 눈을 씻고, 정신을 다듬어 원고의 문장들을 매만진다. 세상이 이해를 못 해도 어느 한쪽에서는 이렇게 조용하게 활자와 대결하는 사람의 일도 있는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