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초입인데도 한낮에는 어지간히 덥다. 이맘때가 되면 슬슬 입맛이 가셔 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간단히 허기만 면하고 싶을 때는 면 요리만 한 게 있을까. 자연스레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하다’라고 표현한 백석 시인의 시 ‘국수’를 떠올린다. 잘 알려진 대로 백석 시인이 말하는 국수는 평양냉면이다. 나 역시 시원하게 열을 내려주고, 별다른 찬을 곁들이지 않아도 입맛을 돋우는 국수 생각이 간절하다.
면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든다. 평양냉면은 한겨울에 먹어야 한다느니, 잔치국수는 비 오는 날 부침개와 먹는 게 제일이라느니. 제 나름의 기준으로 인생을 맛있게 즐긴다. 여름 별미를 생각하면 나는 제일 먼저 콩국수를 떠올린다. 꾸미 한 점 없이 그저 채 썬 오이만을 고명으로 얹은 콩국수. 어머니가 맷돌을 갈아 콩국수를 만들어 주셨던 기억 때문일까.
어머니가 미리 불려둔 백태를 삶아 커다란 함지에 담아 내왔다. 맷돌구멍에 백태를 한 줌씩 부으면 나랑 언니가 맷손을 잡고 돌렸다. 무거워서 한 바퀴 돌리는데도 퍽 힘이 들어갔다. 맷돌짝 틈새로 질금질금 콩물이 비어져 나왔다. 맷돌로 간 콩물은 입자가 거친 듯했지만 진하고 고소했다. 내 기억 속에 콩국수는 푸짐하게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좀 모자란 듯해서 국물 한 방울까지 싹 비우게 되는 음식이었다. 요즘 재료비가 많이 올라서, 콩국수나 냉면은 더 이상 ‘부담 없는 한 끼’라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게 됐다.
이제는 어머니가 만든 콩국수를 맛볼 수 없지만 이따금 어머니가 남겨준 기억을 귀중한 패물 보듯이 꺼내본다. 콩물에 간수를 넣자마자 마법처럼 순두부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정경이며, 경쾌한 박자로 오이를 채 썰던 소리, 콩물에 꿀을 타서 두유를 만들어 준 기억이 애틋하다. 그 슴슴하고도 아릿한 기억의 맛을 마음속 카메라로 ‘찰칵’ 찍어 둔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