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최지혜는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근대 건축물 실내 재현 전문가이다.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순수·장식미술을 공부했으며, 1923년 경성에 지어진 서양인 부부의 옛집 ‘딜쿠샤’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실내 복원을 담당했다.
그가 이번에는 1930년대 경성의 백화점을 책으로 복원해냈다. 레트로풍 표지가 눈길을 끄는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가 그것이다.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경성 백화점은 5층이다. 1층에 식품부·생활잡화부가 있고, 2층 화장품부·양품잡화부, 3층 양복부, 4층 귀금속부·완구부·주방용품부·문방구부를 거쳐 5층 가구부·전기기구부·사진부·악기부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 백화점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가 1층 식품부의 통조림을 시작으로 5층 악기부의 피아노까지 총 130여가지 물건들을 하나 하나 소개한다. 통조림은 완전히 새로운 식품이었고, 조선에 온 서양인에게도 유용했던 음식이었다. 식품부에서는 조미료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 아지노모토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물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100년 전 경성 백화점 구경을 하게 된다. 700여장의 이미지가 수록돼 생생함을 더한다.
저자는 1920∼30년대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서 발행한 층별 안내도, 당시 신문·잡지에 실렸던 기사와 광고 등을 바탕으로 백화점 판매 물건들을 확정했고, 물건에 얽힌 이야기들을 수집해 정리했다. 백화점은 그때도 유행의 첨단이었고, 특히 당시 밀려오던 서구 문물의 쇼윈도였다. 백화점 물건들은 100년 전 경성 사람들의 풍속과 욕망을 전해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