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여성 작가들의 특별한 도전, 양육

입력 2023-06-22 21:32
앨리스 닐의 1967년작 ‘엄마와 아이’는 아기에 대한 엄마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닐은 예술적 자유를 위해 모성과 격렬히 충돌했다. 오른쪽은 1960년 미국 오리건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SF 작가 어슐러 르 귄의 모습이다. 르 귄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예술가로서의 삶에 균형을 잡아준다고 생각했다. 돌고래 제공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란 제목은 아이를 가리킨다.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일을 방해한다. 양육은 여성들의 경력에서 가장 강력한 도전이다. 여성에게는 자녀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모성적 역할은 여성에게서 시간과 몰입을 빼앗아갈 뿐만 아니라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중에 퓰리처상을 받는 앨리스 워커는 임신을 한 뒤 책과 아기, 둘 다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압도당하거나 부러져버릴까봐 두려웠다. 아이를 돌보느라 글의 질이 떨어지고, 아이를 가져서 더 이상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전기작가이자 비평가인 줄리 필립스는 이 책에서 앨리스 닐(1900∼1984), 도리스 레싱(1919∼2013), 어슐러 르 귄(1929∼2018), 오드리 로드(1934∼1992), 앨리스 워커(1944∼), 앤절라 카터(1940∼1992)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이 창작과 양육의 갈등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아이가 그들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들여다본다.

“창조적인 삶에서 모성이 지닌 위험성은 처음 경력을 시작하던 순간을 버티게 해주었던 성공의 가속도가 줄어들면서 고립과 낙담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물여섯 살의 앨리스 워커는 이미 재능과 확신으로 가득찬 등단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하지만 딸 리베카가 태어난 후 다시 자신의 역량을 확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년이 지난 마흔다섯에 ‘컬러 퍼플’을 통해 문학계 명사가 됐다. 딸인 리베카 역시 작가가 되면서 엄마가 했던 고민에 똑같이 직면한다. “아기를 키우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많은 여성 작가들이 낙태를 경험했고, 결혼에 실패했으며, 아이들을 떠나기도 했다. 수전 손태그는 누구보다 용감한 작가였지만 아이 때문에 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숨겨야 했다. 화가 앨리스 닐은 예술과 양육 사이에서 고투하다 둘을 양립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예술을 선택했다. 닐의 초상화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엄마 예술가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작가들은 모두 아이로 인해 혼돈을 겪었고, 자기 안의 무언가가 크게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엄마가 되는 동시에 작가가 되는 길을 가까스로 발견했다.

도리스 레싱은 결혼과 양육을 둘러싸고 거듭 실패했으며, 그것은 노벨문학상이 수여된 레싱 문학의 주제가 되었다. “실패한 결혼과 육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던 여성이 거의 없던 시대에 레싱은 문학적 초상화 속에 여러 모순된 감정들을 겹겹이 쌓아올려 모성이 주는 만족감, 유혹, 좌절, 죄책감, 분노를 묘사했다.”

SF 거장 어슐러 르 귄은 모성을 여성에 대한 억압의 원천으로 생각한 당대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한 개인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안 할 수는 없는 그 시시한 일상적 일들이 내 삶에 균형을 잡게 한다.”

르 귄은 자신의 커리어가 막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바로 그 때, 피임에 실패해 세 번째 임신을 한다. 그리고 셋째 테오를 키우는 동안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영국 페미니스트 작가 앤절라 카터는 결혼하고 소설을 출판해 상을 탄 후 43세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운이 좋게도 모성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모성이 그녀의 작품에서 뭔가를 바꿔놓은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후기작에는 초창기 글쓰기와 같은 차가운 힘이 없다.”

카터의 마지막 장편소설 ‘현명한 아이들’에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런 영예로운 멈춤은, 진실로 말하건대, 불협화음을 내지만 상호보완적인 우리 삶의 서사 속에서 때때로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기로 선택한다면, 그렇게 멈춰선 채 더 멀리 나아가길 거부한다면, 당신은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불러도 좋다.” 물론 카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은 엄마와 작가라는 두 정체성, 양육과 창작이라는 두 과업이 서로 겹쳐지며 빚어내는 드라마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얘기했지만, 창작하는 엄마들 대부분은 임시 공간에서 작업했다. 닐은 거실에서, 르 귄은 다락방에서, 로드는 침실에서, 손태그는 침대에서 글을 썼다. “예술가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모성과 창조는 격렬하게 충돌하며 작가를 혼돈 속으로 밀어넣기도 하지만 ‘창조적 모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아이들의 존재 덕분에 작가가 되었다”는 고백도 가능하다.

이 책은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엄마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 여성 작가 6명의 집단전기이면서 엄마가 될 때 예술가는 어떤 변화를 겪는가, 모성은 창조를 방해하는가, 모성이 예술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가 같은 흥미로운 질문들을 탐구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