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시 대모 김혜순 ‘여성으로서 詩를 쓴다는 것’

입력 2023-06-22 18:38 수정 2023-06-22 18:40

“시는 시인의 것이면서 독자의 것입니다. 시인과 독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에서 은밀히 만납니다. 시인은 유령처럼 독자의 시선에서 다시 탄생합니다.”

40년 이상 시를 쓰며 한국 현대시의 저변을 넓혀온 김혜순 시인의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김혜순의 말’은 황인찬 시인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김혜순과 서면으로 주고받은 대화를 묶은 책이다. 책은 시란 무엇인지, 시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생각을 두 시인의 언어로 담았다.

김혜순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입선하고 1979년 문학과지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돼 2021년까지 강단에 섰다. 책에는 시인의 어린시절,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때,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시기와 학생들을 가르치던 날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를 통해 김혜순의 삶과 작품 세계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모해 나갔는지 알 수 있다.

인터뷰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고통’이다. 김혜순의 말 속에서 고통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 깊게 고민해 온 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여성으로서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도 담겼다.

인터뷰를 진행한 시인 황인찬은 “수많은 고통을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탐구하는 것이 김혜순 시인의 지난 작업이었노라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치열함이자, 시민으로서의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김혜순은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등을 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삼성호암상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