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존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그건 조작”

입력 2023-06-22 22:14
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성이 증진된다는 ‘파워 포즈’ 이론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에이미 커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가 원더우먼을 배경으로 힘 있는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제시 싱걸은 ‘손쉬운 해결책’에서 파워 포즈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메멘토 제공

‘긍정적 사고의 힘’ ‘시크릿’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몰입의 즐거움’ ‘마인드셋’ ‘그릿’ ‘넛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프레즌스’ ‘린 인’…. 자기계발서 분야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들이다. 자존감을 키우거나 긍정적인 마음을 갖거나 포즈를 자신감 있게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사회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제시 싱걸은 ‘손쉬운 해결책’에서 21세기 독자들의 주목을 독차지하고 있는 자기계발 심리학을 비판적으로 검증한다. 그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심리학의 이름으로 유포되는 이런 연구들이 과학적으로 매우 허술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의 해법이 진짜 문제를 감추거나 진정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자존감 열풍을 보자. 이 열풍은 198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정치인이 캘리포니아대를 설득해 자존감을 연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낮은 자존감이 알콜 중독과 약물 남용, 범죄와 폭력, 아동 학대, 10대 임신, 매춘, 만성적인 사회복지 의존과 아동의 학습 부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를 출판하게 하면서 시작됐다. 이 연구는 언론에 집중적으로 조명됐고, 미국의 학교와 기업들은 앞다투어 자존감 교육을 도입했다. 자존감을 가르치는 수많은 책과 강의가 생겨났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의 자존감 연구는 조작된 것에 가까웠다. 예컨대, 알콜 중독과 자존감과의 연관성은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특별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는 “그건 정말로 부정직한 짓이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자존감 연구자들은 자존감을 높이면 범죄율이 낮아질 것이라 주장했지만, 몇몇 연구들은 범죄자들이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보다 자존감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존감과 긍정적인 성과들을 연결하는 탄탄한 인과적 증거는 이후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더 행복하고 낙관적으로 만들 수 있는 믿을 만한 방법이 있으며, 그런 변화가 정신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 같은 이점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하는 긍정심리학은 어떨까. 하버드대는 긍정심리학 수업이 대학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강좌가 되었다고 선전했다. 긍정심리학은 미군에도 도입돼 모든 군인의 필수적인 정신건강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18년에 출간된 비판서에 따르면 “사실상 고려 중인 긍정심리학의 모든 연구 결과는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이의가 제기되어 있고… 주요 결론들이 의심받거나, 수정되거나, 심지어 폐기되었다.”

사람이 행복해서 더 오래 사는지, 아니면 오래 살아서 행복한지와 같은 상관관계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고, 개인의 행복도와 면역력 간의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주 허약하다. 또 학교나 군대에 도입된 회복탄력성 강화 프로그램들의 효과를 실증하는 데이터는 없다.

근래 공공문제 해결책으로 주목받는 ‘넛지 열풍’은 어떻게 봐야 할까. ‘넛지’는 행동경제학을 적용한 아주 작은 개입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투표일을 알려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투표율을 높이거나, 장기기증 공문의 기본 선택을 ‘아니오’에서 ‘예’로 바꿔 기증자를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저자는 넛지가 결과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며, 경제위기나 사법개혁 같은 문제를 넛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고 본다. “조직적 개혁은 넛지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참인 것은 아니다. 책은 자기계발 심리학의 텅 빈 내용을 드러내고, 심리학계에서 벌어지는 ‘수상쩍은 연구 관행들’을 고발한다. 특히 자기계발 심리학이 우리가 경험하는 곤경과 불안, 실패 등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로 몰아간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저자는 “간단한 해결에 관심을 두게 만듦으로써 불우한 사람들이 그 간단한 방법들을 시도하지 않아서 불운을 없애지 못한다고 쉽게 생각하도록 만들지 모른다”면서 “이 모든 것이 정의와 공정과 사회개혁에 관한 우리의 집단적 관념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