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대구의 한 4층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다 구급차에서 사망했다. 불과 두 달 후 40도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던 5살 아이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돌다가 입원할 병상을 찾지 못해 결국 숨졌다. 의료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라 국민의 충격은 더 컸다.
뉴스를 접하며 구급차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지, 또 사건 이면에 있는 응급실 의료인들의 열악한 상황과 제도적 보완의 절실함도 알게 돼 안타까움은 더 컸다.
얼마 전 딸아이가 새벽에 40도의 열이 올랐다. 해열제를 먹여도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도 열은 떨어질 줄 몰랐다. 종종 감기로 열이 올랐을 때도 해열제를 먹이면 늘 효과가 있었던 터라 더 높아지는 온도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갑자기 아이는 미세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열에 의한 오한인지, 열성경련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짐을 챙겨 5분 거리의 대형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담긴 기도였다. 병원에 다다르자 이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남편은 아이를 들춰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 벨을 눌렀다.
기대감도 잠시, 응급실 문 앞에서 마주한 의료진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의료진은 “중증 환자가 아니고 이곳엔 소아과 전문의가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분명 소아응급실이 있다고 알고 찾은 병원이었다. 아이 상태는 한번 살펴봐 주지도 않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니 안도했던 마음은 당혹감과 분노로 바뀌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응급실 뺑뺑이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뉴스에서 봐온 여러 사건이 뇌리를 스쳤다.
곧 구급차가 도착했다. 응급실 정문 앞에 멈춰 선 구급차 안에서 아이는 그제야 열과 맥박을 잴 수 있었다. 응급실이 눈앞에 있지만 구급차 안에서 처치를 받는 상황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조금 먼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 구급 대원의 말에 또다시 마음이 무너졌다. “그곳에도 응급치료만 가능할 뿐 소아 전문의는 없습니다.” ‘응급실 뺑뺑이’를 경험해 보니 남의 일로만 여겼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간밤에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사모들의 단톡방에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모들은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있다는 사연부터, 병원 예약 애플리케이션을 켜면 오픈 1~2분 만에 마감된다고 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한 사모는 “소아과는커녕 원정 출산을 가는 게 현실”이라며 “응급상황 대응도 취약해 아이가 아플 때면 덜컥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을 계기로 사모들은 다음세대들을 위한 안전한 의료 환경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기로 다짐했다.
“애앵애앵애앵...”
베란다 너머로 응급환자를 싣고 집 옆의 병원으로 달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응급실에 다녀온 이후 우리 가족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생명의 소리’로 여기게 됐다. 생사를 다투며 달려가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평범한 삶을 주심에 대한 감사와 책임의 무게를 동시에 느낀다.
이름 모를 환자와 의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 아이도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서 내려놓고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한다. “하나님 저 환자 꼭 살려주세요. 그런데요 하나님, 구급차 안에 아기가 타고 있으면 어떡하죠. 꼭 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도 심(힘)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제일 힘들고 아파했을 아이의 기도를 들으며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더욱 고민하게 된다. 내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인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함께 중보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 땅이 새롭게 변화될 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