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21세기 관통하는 12개 주제, 성경의 눈으로 풀다

입력 2023-06-23 03:04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15일 서울 성동구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에서 시대의 질문을 들고 다시 성경을 찾은 여정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시대의 질문에 부딪힐 때 이를 들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간다. 인공지능(AI)이 일으키는 온갖 윤리 문제,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 속에서 ‘N잡러’로 표현되는 평생직장의 종말, 비정규직 800만 시대가 암시하는 격차 사회, 힐링 혼밥 엔터테인먼트 등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개인의 고립 문제까지.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를 저술한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는 교회에서 시대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다시 성경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훌륭한 신학은 자기 시대의 도전에 충실한 신학입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이들의 자세가 그러했습니다. 이미 마가복음이 있었지만 다른 복음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시도가 누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으로 이어집니다. 바울 서신 역시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해석됐으며, 구약 성경도 하나님의 뜻을 부여잡고 씨름했던 시대의 고민이 켜켜이 쌓인 결과입니다. 성경은 자기 시대의 도전을 진지하게 직면하고 씨름했던 이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빛을 비추어 줍니다.”(9쪽)

지난 15일 박 목사가 원장으로 사역하는 서울 성동구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이사장 김지철 목사)에서 그를 만났다. 박 목사는 ‘에클레시아’를 주제로 한 미국 시카고대 박사 논문으로 세계 신학계에 이름을 알린 성서신학자다. 한일장신대 신약학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포항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021년 저술한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IVP)는 그해 국민일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번 책은 AI 행복 비정규직 피로 불안 냉소 포스트크리스텐덤 등 21세기를 관통하는 12가지 키워드를 성경을 통해 풀이하는 내용이다. 박 목사는 “시대와 성경이 목회 현장의 구체적 청중들 앞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신 신학 논의를 앞세우는 학자의 논문 작성 마인드가 아니라 가독성을 중시하고 쉽게 풀이하려 노력하는 목회자로서의 마음을 담아 집필한다는 의미다.

AI 시대의 영성을 말하며 박 목사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인용한다. 착하게 살아라, 이웃을 도우라는 권면을 뛰어넘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냐’란 질문이 예수님의 이 비유에 내포돼 있다고 밝힌다. 강도를 만나 상해를 입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간 제사장, 역시 보고 피하여 지나간 레위인과 달리 사마리아인은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행동한다. 박 목사는 종교적 의무를 준행하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눌러버린 바리새인들의 종교는 이미 기계가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613개 모세의 율법, 365개는 하지 말라 하고, 인간 뼈의 개수인 나머지 248개는 하라고 하는 유대인의 율법주의는 AI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은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고 말한다. 기계가 되길 강요받는 상황에서 이웃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 참된 인간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한다. 박 목사는 인간을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의 잣대로만 재는 물신주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박 목사는 매년 펴내는 책을 향해 “씨 뿌리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씨앗이 떨어져 어디까지 자랄지 모르지만 다른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성경의 눈으로 시대를 읽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는 뜻이다. 박 목사는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사도행전의 같은 본문으로 연속 설교를 진행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