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공교육, 그 최고난도 문제

입력 2023-06-22 04:08

“다음 중 중고교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①서울 강남으로 이사 가기 ②좋은 학원 찾아 보내기 ③공교육을 믿고 학교에 아이 맡기기. 정답은 3번이라고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년 전쯤 이명박정부의 마지막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던 시절, 교육부 핵심 관계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정책 책임자들도 이런 세태를 바꾸기 어려울 만큼 교육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는 현실적 푸념이었겠지만, 공교육만으론 어차피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오래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으로 이사를 갈까 고민하다 강북에서 중학교를 보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생 딸이 첫 시험을 치른 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문제가 나왔는데, 학원 안 다닌 나만 못 풀고 다른 애들은 다 풀었어”라며 펑펑 울며 집에 왔다고 했다. 바로 학원 탐방을 시작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학교는 정말 안 되나’라는 의심을 하게 됐다.

10년 전 기억을 끄집어낸 건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킬러 문항 배제’ 발언 때문이다. 사실 킬러 문항이 왜 생겼는지, 그 문제들이 얼마나 풀기 어려운지 학생과 학부모는 다 알고 있다. 대통령처럼 왜 그런 식으로 문제를 내느냐고 따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뿐. 그저 할 수 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내기 위해 학원이든 인터넷 강의든 과외든 동원 가능한 수단을 찾는 것뿐이었다.

학원을 꼭 다녀야 하냐고 묻자 ‘학원에선 몇 년 치 기출문제에, 이웃 학교 유형 분석에, 심화 문제까지 대비해주는데 나 혼자 공부해서 경쟁이 되겠냐’고 반문하는 중학생 자녀 말에 말문이 막혔다는 부모의 얘기도 들었다. 사교육 도움 없이 입시 대비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학생과 학부모, 심지어 교사들 사이에서도 통하는 세상 같다.

지금처럼 교육 과정이 부모 세대보다 더 치열한 대입 경쟁 환경으로 아이들을 몰아넣고, 어떻게든 학생들의 손톱만 한 격차를 찾아내 줄세우기 하는 평가에 맞춰져 있는 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며 상위권 위주로 학생 변별력 확보에 교육 과정의 초점이 맞춰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아이들이 ‘학교 다녀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며 떠나고 있다. 학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의대나 명문대 입시 준비에서 유리한 길을 찾기 위해 떠나고, 대학 외에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도 챙겨주지 않으니 직접 필요한 배움을 찾아 학교를 떠난다.

사실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들어갈 직장도, 받는 월급도, 사회적 시선도 철저히 달라지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개혁은 그야말로 ‘최고 난도 문제’다. 문재인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은 586 학부형들이 전인교육에 관심을 두고 그런 방향으로 공교육 개혁안을 지지할 줄 알았는데 ‘SKY’ 명문대 입시 제도에 더 민감한 걸 보고 놀랐다며 개혁 추진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느 정권이든, 어느 장관이든 결국 학생과 학부모가 ‘정말 그렇게 바뀌겠구나’ 하고 믿고 따를 만큼의 신뢰를 주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어렵다는 얘기다.

이명박정부에 이어 10년 만에 또다시 교육부 수장을 맡고 있는 이주호 장관은 대통령 발언으로 시작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안심하라’는 이 장관의 말을 듣고, 32쪽에 달하는 보도자료도 꼼꼼히 읽어봤지만 마음속 물음표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교육 당국이 이를 해소하지 못해 생기는 혼란과 부담이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건 아닐지, 정말 두렵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