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의 지주회사가 ‘업종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목적지는 2차전지다. 배터리 원소재·제조와 관련성이 높은 분야에 직접 뛰어들거나, 그룹 내 계열사 간 시너지를 추구하는 식이다. 특히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이 거세지면서 국내외 기업끼리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포스코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그룹 근간인 철강 산업에 이어 2차전지 사업 확대에 뛰어들었다. 포스코홀딩스는 글로벌 전구체 시장 1위인 중국의 CNGR과 2차전지용 니켈 정제법인 설립을 위한 합작투자계약(JVA)을 맺었다고 21일 밝혔다. 포스코홀딩스와 CNGR이 각각 60%, 40% 지분을 갖는다. 경북 포항시 영일만4산단에서 연산 5만t 규모로 황산니켈을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4분기 착공해 오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배터리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도 이날 CNGR과 공동으로 전구체 생산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전구체는 배터리 4대 소재인 양극재의 생산에 쓰이는 중간재다. 한국 생산 비중은 13% 수준에 그친다. 포스코홀딩스는 CNGR과의 합작법인에서 생산한 황산니켈을 포스코퓨처엠에 공급해 연산 11만t의 전구체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수입에 의존하던 전구체 조달 창구를 넓히는 것이다. 유병옥 포스코홀딩스 친환경미래소재총괄 부사장은 “니켈과 전구체, 양극재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완성해 시너지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존 업종과 배터리 산업 간의 연관성이 큰 기업들도 잇따라 2차전지 사업에 참전을 선언하고 있다. LS그룹은 지난 16일 배터리 소재 기업인 엘앤에프와 함께 전북 새만금 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계열사인 LS MnM이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부산물 등을 가공해 2차전지용 황산니켈을 만들고, 이를 엘앤에프와의 합작공장에 공급해 전구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빠르면 오는 2025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LS그룹 관계자는 “한국 기업 간 동맹을 통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응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도 배터리 원료·소재 트레이딩(무역)·투자 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단순한 배터리 셀·소재를 운반하는 비즈니스를 넘어 종합상사처럼 비철금속에 직접 투자하고 물량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앞서 물류 역량을 활용해 폐배터리를 회수하고 이를 다른 수요처에 공급하는 재활용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현대차그룹 내 전기차 사업과 연계한다는 기대감도 제기한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배터리 합작 공장에 필요한 원소재 물량 확보에 현대글로비스가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 상승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후발 주자들이 참전이 계속 이어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