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최초’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사회를 꿈꾸며

입력 2023-06-22 04:06

역사에 기록된 극소수는 차별
이겨내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대부분은 좌절한 채로 살아가

이젠 플랫폼 기반으로 이종 간
융복합 통해 출현하는 새로운
시장서 경계 넘나들며 끊임없이
최고 위한 '최초' 만들어 낼 것

평등과 상생 구현하는 플랫폼
경제 선도하려면 위계 체계와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
구분 허물고 문제 해결 나서야

역사에는 ‘최초’라는 수식어로 묘사되는 수많은 인물이 존재한다. 조선시대에 종3품에 오른 최초의 노비 출신 과학자 장영실, 종1품에 오른 최초의 서자 출신 명의 허준, 백정 출신의 한국 최초 외과의사 박서양,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대한민국 최초 고졸 출신 대통령 김대중 등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역사 속의 인물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지만 평생을 차별과 싸우며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젠더, 나이, 출신 지역, 정치 이념, 학벌, 직업, 소득 등을 이유로 조직과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초라는 수식어로 묘사되는 인물들의 극적인 삶의 스토리에 우리는 무한한 감동을 느끼고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을 일구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가 가진 편견과 고정관념이었을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극소수는 차별을 이겨내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대부분은 차별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한 채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차별을 이겨내고 성공을 거둔 이들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훈장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흔들어대는 주변과의 갈등 그리고 차별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한 분노 때문에 결국 성공을 지키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는 경우도 많았다.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사회의 편견과 싸우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최초 여자 상업고등학교 출신 대기업 임원, 최초 이민자 출신 국회의원 등 방송과 신문에 소개되는 최초 타이틀을 가진 이들의 스토리가 화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시장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파편화되고, 파편화된 시장은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내며 사용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시장의 영역 구분은 허물어지고 이종 간의 융복합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이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은 최고를 만들어내기 위해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최초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최초가 낯설지 않은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지속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최초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제를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 경계와 구분의 사유 체계인 유가 사상에 기반을 둔 위계적 가치 체계는 우리 사회가 전근대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공급을 효율적으로 늘릴 수 있는 틀을 제공함으로써 고속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하지만 뿌리 깊은 유가 사상이 낳은 수직적 문화와 계층 간의 단절은 플랫폼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탈경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는 인위적인 체계를 부정하고 편견에서 벗어나 사심 없이 대상을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한 노자의 사상을 되새기고 플랫폼 경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때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비유로 들며 최고의 선을 설명한다. 물은 다른 물길을 만나면 밀어내지 않고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수평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물길의 생김새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어 가지만 물의 본질은 잃지 않는다. 이종 간의 융복합을 통해 끊임없이 최초를 만들어내며 평등과 상생을 구현해야 하는 플랫폼 경제는 물에서 성장을 위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편견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행하는 선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영역의 구분을 허물고 영역 간의 융복합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인구 절벽의 상황에서 이민을 통해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단기적 관점에서 사회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사라질 때 유효한 대안이다. 미국이 예전에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듯이 자질과 경험이 탁월하다면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게도 대통령 자리를 맡길 수 있을 정도의 냉철함과 포용력을 가질 때 우리는 플랫폼 경제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