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령인구 절벽과 회색코뿔소

입력 2023-06-22 04:02

경제용어로 ‘회색코뿔소(Gray Rhino)’라는 표현이 있다. 계속된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간과하다가 더 큰 위험에 직면하는 현상을 말한다. 학령인구 감소는 오래전부터 예상됐다. 1996년 정부가 발표한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보고서’에서 이미 2003년을 기점으로 대학 정원 역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20년간 정부는 18만명에 이르는 대학 정원을 감축했지만 문제는 학령인구 감소 속도가 예상보다 더 가파르다는 점이다.

올해 고교 3학년 학생 수는 39만8000여명으로 1994년 수능 도입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대입 정원은 51만명으로 11만명이나 많다. 2022년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이다. 대학 진학률 70%를 고려하면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41년 대입 예상 인원은 20만명 수준으로 전망된다. 외환위기 당시 전 국민이 고통 분담을 통해 위기를 타개했던 것처럼 현재의 대학들도 공동의 대응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생존 전략이 절실하다.

학령인구 절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 번째로 수도권과 지방 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학 정원을 10% 감축해야 한다. 대학 입학 가능 인구가 2030년 40만명대에서 2040년 20만명 수준으로 줄어드는 ‘학령인구 대폭락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전체 대학 입학정원을 고려하면 지방 소규모 대학은 대응조차 못하고 당장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체 대학이 입학 정원 10%를 감축하면 2024년 기준 신입생 충원율이 83.3%에서 92.6%로 호전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체 대학이 정원을 감축한다면 2030년부터 시작될 폭락기를 늦출 수 있고 그만큼 위기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두 번째로 정원 감축이 대학의 재정 수입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사립대는 등록금 의존율이 53.5%에 달하는 현실에서 정원 감축은 대학 경쟁력 약화와 직결된다. 정원을 감축하는 규모에 비례한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며, 등록금 자율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위기를 겪은 일본의 경우 지역 산업과 연계한 특성화된 강소(强小) 대학을 육성하고 정원을 초과 모집한 대학에는 지원금을 감액하는 ‘정원 엄격화’ 정책을 펼쳤다. 이를 통해 일본의 대학 수는 1996년 576곳에서 2006년 744곳, 2022년 803곳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런데도 사립대 정원 미달 비율이 2016년 44.5%에서 2019년 33%로 감소했다.

학령인구 감소는 개별 대학을 넘어 범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눈앞에 있는 낭떠러지를 향해 돌진하는 회색코뿔소를 직시하고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들도 적극적인 자세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두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상생과 공존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헌영 강원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