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 기업의 브랜드를 무단 선점한 자국 상표 브로커에 철퇴를 내린 중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특허청 지원으로 뭉친 프랜차이즈·의류·화장품·인형 업종 국내 중소기업 53곳이 중국 상표 브로커 5인에 공동 대응해 모두 승소한 사례다. 중국에서 우리 기업의 브랜드를 지킨 기념비적 판결을 이끈 데는 유성원(46) 인텔런트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의 공이 컸다. 특허청 사업 수행기관으로 이들 53개 기업을 대리한 유 대표는 중국 안팎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현지 상표 브로커의 악의성을 치밀하게 입증했다. 지난해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세간에 ‘중국 상표권 분쟁 53전 53승 변리사’로 알려진 그를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계획 없던 중국행이 만든 기회
한성과학고와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거쳐 2004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영어·일어·중국어 등 3개국어에 능통한 ‘언어 능력자’다. 이공계 전공자로 어학에 강한 비결을 묻자 유 대표는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답했다. “비결이랄 것도 없어요. 영어는 카투사 복무하며 잘하게 됐고, 일본어는 이전 회사에서 ‘변리사라면 일본어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요구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중국어는 어학연수를 가서 익혔고요.”
그는 2008년부터 1년여간 중국 북경어언대에서 언어 연수를 하며 한국인 변리사를 찾는 현지 특허법률사무소에 취업했다. 이때 중국어뿐 아니라 현지 제도와 문화를 익히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애초 중국 지식재산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떠난 건 아니었다. 그는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중국행은 같은 변리사로 중국 언어연수를 희망한 아내 덕에 이뤄졌다. “외고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아내가 장모님과 아들을 데리고 중국 언어연수를 다녀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어린 터라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다 확신을 얻고 중국행을 결심해 같이 베이징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온 유 대표는 2010년 5월 지금 회사의 전신인 ‘지심특허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당시 국내에선 찾기 힘든 중국 전문 특허법률사무소였다. 아내와 후배 변리사 3명이 시작한 특허법률사무소는 점차 중국 관련 업무가 들어오면서 성장세를 탔다.
현재는 변리사와 직원 20명이 몸담고 있다. 2020년 ‘53전 53승’ 기록을 거둔 이후로도 중국 상표권 분쟁 소송을 계속 맡고 있다. 그는 “지난해 회사 이름을 바꾸고 사업 범위를 확장해 지금은 정보기술(IT) 분야 특허 관련 업무를 70%, 나머지는 여전히 중국 상표권 분쟁 소송을 담당한다”며 “53전 53승으로 일군 ‘랜드마크 판결’로 소송 승률은 90%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 사명인 ‘인텔런트’는 영어로 지적재산을 뜻하는 인텔렉추얼 프로퍼티(Intellectual property)와 재능을 뜻하는 탤런트(Talent)를 합친 것이다. “하나님이 준 재능으로 지적재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유 대표가 지었다.
신앙, 내 삶의 나침반
모태신앙으로 서울 소망교회에서 40여년간 신앙생활을 해온 그에게 기독교 신앙은 ‘삶의 나침반’이다. 고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네 식구가 뿔뿔이 흩어진 경험, 당시 생계를 책임지고자 취업 전선에 나선 어머니의 부상…. 끝나지 않는 불행에 좌절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그였지만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건 ‘어디서든 느껴지는 하나님의 임재’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 후 유 대표는 교회 수련회 등에서 기도하다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제 신앙은 고난으로 온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앙은 하나님께 뭔가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분께 항복하는 과정이란 걸 알게 된 거죠. 예전엔 가세가 기운 우리 집이 부끄러웠지만 그 고난으로 은혜를 배운 걸 안 지금은 오히려 자랑으로 느껴집니다.”
현재 유 대표는 모교회인 소망교회를 떠나 소망교회 부교역자가 개척한 서울 서초구 소망잇는교회(태원석 목사)에 출석 중이다. “저와 아내에겐 그간 ‘대형교회에서 안주하며 살지 않았나’란 고민이 있었어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섬겨보자는 마음에서 지금의 교회로 옮겼습니다.” 교회 섬김뿐 아니라 가정예배에도 열심이다. 유 대표 부부는 9년째 주일 오후 자녀들과 마주 앉아 가정예배를 드린다. 월드비전 등 국제구호개발기구 정기 후원으로 교회 밖 나눔에도 동참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인텔런트 특허법률사무소가 첨단 기술에 강한 법무법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지난해 창업한 IT 스타트업 안정화도 과제다. 유 대표는 앞으로 수익뿐 아니라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 사업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여러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때 제 선택과 결정에 있어 신앙은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돈뿐만 아니라 가치도 추구하게 도와주지요. 500건 이상의 중국 상표권 분쟁도 그래서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기업을 돕고자 최소한의 비용만 받았거든요.”
‘기독 스타트업 창업가와 손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소망도 있다. “창업을 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적잖더라고요. 기독 스타트업 대표와 기도로 서로를 격려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게 사업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이 아닐까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