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야당 대표를 초청, 거친 언사를 사용하면서 한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겁주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 외교의 특징인 일종의 전랑(戰狼)외교다.
외교사절은 국가를 대표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그의 발언과 행동은 중국 정부가 의도를 갖고 한국 정부에게 쓴 소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쓴소리가 겁박에 가깝다는 것이다.
전랑외교가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최근 호주의 사례가 그렇다. 호주가 중국의 인권 문제와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를 둘러싸고 충돌하면서 중국이 호주의 중국에 대한 주요 수출품목에 대해 수입중지 등 강수를 두면서 겁박했지만, 호주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중국은 호주와 타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에 대해 전랑외교를 구사하는 것은 첫째,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틈새를 노림으로써 한국을 분열시키고 결국 우리가 고개를 숙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초래한 폐해이기도 하다.
외교는 초당적이라야 한다. 외교적인 이슈에 대해 국내 정치가 분열되면 이 분열의 틈새는 항상 공격의 루트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전랑외교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인식을 악화시킴으로써 국익에도 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지만 중국의 정치체제가 시진핑 주석의 압도적인 권력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 그 부작용을 걸러내지 못하는 체제의 동맥경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한국은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과 수출시장을 중국시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변화해야 한다.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해야 살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미국과 일본 시장을 확대하고,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알타시아’(Altasia·중국시장의 대안이 되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 나가야 한다. 이런 일들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슬러서는 이길 수 없다. 중국이 최근 한국에 대해 메모리 반도체를 계속 공급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그러한 사례다. 국제정치의 원리도 유사하다.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지금 멀어진다고 너무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가 그러한 사례이다.
외교는 이러한 과정속에서 변하지 않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겁박을 준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 외교는 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항상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최종 목표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그 길은 험하지만 가야 하는 길이다. 그 길은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 몸소 보여주셨던 길이다. 그 길이 전랑외교를 종료시키는 길이다.
김봉현 전 호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