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엘리엇에 일부 패소… 韓정부, 1300억 지급해야

입력 2023-06-21 04:07
연합뉴스TV 제공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배상금 690억원을 포함해 1300억여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결정이 20일 나왔다. 엘리엇이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를 신청한 지 5년 만이다. 앞서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던 정치 권력과 재벌의 부정한 유착이 결국 국고 손실로 이어지게 됐다는 평가다.

20일 법무부에 따르면 ICSID는 이날 오후 8시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금 5358만6900달러(약 690억원)와 법률비용 2890만3100달러(약 372억5000만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판정문을 정부에 발송했다. 배상원금에 2015년 7월부터 판정일까지의 5% 연 복리 이자도 지급해야 해 실제 정부가 지급해야 할 돈은 1300억원 상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7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청구 금액은 원 달러 환율 1288원 기준으로 9917억원에 달하는데, 이번 판정에서는 원금 기준 약 7%가 인용됐다. 정부가 판정 불복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8월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2800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ISDS 판정에 대해 불복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에 쟁점이 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2015년 5월 합병 계획을 발표했는데 합병 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삼성물산 주주(국민연금 등)에게 불리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는 유리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대주주였다. 엘리엇은 합병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했고 그해 6월 국민연금 등에 합병 반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었다.

찬 반 세력 규합이 벌어진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캐스팅 보트를 쥐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합병 찬성 입장을 정했다. 같은 달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다.

이후 박영수 특검팀 수사로 당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합병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문형표 당시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법조계에서는 박근혜정부가 국민연금의 합병 관련 의결에 부당한 압력을 넣은 사실이 국내 법원에서 인정된 만큼 ISDS 배상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았다. 엘리엇 측은 “정부 불법 개입이 없었으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뇌물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이 회장은 지난 2021년 1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이 회장은 합병 과정에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별도의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을 상대로 제기된 ISDS 10건 중 엘리엇 사건 포함 5건이 종료됐고 5건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도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2억 달러 규모 ISDS를 제기한 상태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