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구룡마을, 초여름밤 화려한 반딧불이 향연

입력 2023-06-21 20:53
어둠이 내려앉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구룡마을 대나무숲 바로 옆 전원주택 주변에 반딧불이가 사랑을 찾아 날아다니며 화려한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반딧불이 수컷은 성충이 되면 배 끝부분 발광 세포의 화학 작용으로 빛을 낸다.

전북 익산의 금마는 네 번이나 도읍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으로 유서 깊다. 고조선 준왕이 기원전 198년쯤 남하해 수도를 세웠고, 마한 54소국을 총괄하던 도읍지였고, 고구려 왕손 안승이 세운 보덕국의 수도였고, 백제의 무왕이 왕궁을 지어 천도한 곳이다.

금마면 구룡(九龍)마을은 시골 마을이지만 110가구나 되는 큰 마을이다. 마을 한복판 제일 높은 언덕엔 높이 약 20m, 둘레 4.6m, 수령 300년 이상의 보호수 느티나무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이곳 정자 앞에 대나무 숲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룡마을 대나무 숲이 바로 보인다.

대나무숲은 전체 면적 5만여㎡(1만5000여평)로, 전남 담양 죽녹원 대나무숲보다도 훨씬 크다. 한반도에서 제일 큰 대나무 군락지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는 쓰임새가 많아 ‘신의 선물’이라 불린다. 대나무밭은 생금밭이라고 할 정도로 활용도도 무척 다양하다. 대밭 한 마지기(300평)만 있으면 대와 죽순, 죽세공품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룡마을에서 만드는 죽제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아 강경 오일장을 통해 인근 지방으로 많이 팔려갔다는 얘기도 있다.

'명상의 길'과 '소통의 길'이 연결된 구룡마을 대나무숲.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주요 수종인 왕대의 북방한계선이어서 생태적인 가치도 높다. 하지만 2005년 큰 위기를 맞았다. 겨울 혹독한 추위로 큰 냉해를 입어 왕대가 거의 고사하는 시련을 겪었다. 마을 주민들과 익산시 그리고 환경단체 등이 고사한 대나무를 베어내고 생육환경을 개선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경관이 복원되고 있다.

구룡마을 대나무숲 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왕대가 정돈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모습을 보여준다. 숲 사이로 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마음을 평온케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은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인기 드라마 추노와 영화 최종병기 활의 촬영지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주는 숲 가운데 생명의 광장, 만남의 광장 그리고 우물터 광장이 있다. 이들 광장을 중심으로 산책길인 ‘명상의 길’과 ‘소통의 길’이 뻗어나간다. 어느 쪽으로 가도 길은 헤어졌다가 만나고 다시 원점으로 이끌어 준다.

초여름 구룡마을 대나무숲을 찾는 것은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서다. 대숲에 어둠이 내리면 연초록 불빛이 별처럼 하늘을 수놓는다. 운문산반딧불이 수컷이 암컷을 향해 ‘사랑의 텔레파시’를 발산하며 화려한 군무(群舞)를 펼친다. 숲 전체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의 불꽃 향연이 장관을 이룬다.

운문산반딧불이는 한국 고유종으로 국내 서식하는 반딧불이 중 가장 밝은 빛을 낸다.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는 알에서 성충까지 자라는데 1년 정도 걸리고, 성충의 수명은 2주 남짓이다. 6월쯤 성충이 되면 수컷이 배 끝부분에 있는 발광 세포의 화학 작용으로 빛을 내고, 암컷은 가장 밝은 빛을 내는 수컷과 짝짓기한다.

구룡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륵산 자락에 미륵산성이 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석축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1822m에 이르며 10개의 치(雉)와 동문지·남문지·옹성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準王)이 쌓았다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불린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해 신검의 항복을 받은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산속으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대단한 위용의 미륵산성이 펼쳐진다. 왼쪽 성벽은 경사가 매우 가팔라 출입 금지다. 오른쪽 성벽은 안쪽에 계단이 놓여 있어 올라갈 수 있다. 성벽 위에 서면 양쪽으로 펼쳐진 위풍당당한 산성 풍경이 시원하다.

석재 1627개를 짜 맞춰 복원한 미륵사지 서탑.

구룡마을에서 가까운 기양리에 미륵사지가 있다. 국보 11호인 서탑이 웅장한 규모로 복원돼 있다. 석재 1627개를 짜 맞춘 높이 14.5m, 폭은 12.5m의 석탑이다. 완전히 무너져 석재가 유출된 동탑은 새롭게 지어졌다. 미륵사지에 자리 잡은 국립익산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메모
미륵산성은 내비에 ‘베데스다 기도원’
박물관 음악회…‘왕궁 포레스트’ 휴식

삼한시대 축성돼 위풍당당한한 위용을 자랑하는 미륵산성.

수도권에서 자가용을 운전해 전북 익산의 구룡마을로 간다면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강경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좋다. 쭉 뻗은 도로를 달려 오동정교차로에서 '삼기·여산·망성' 방면으로 향하면 된다. 미륵산성 입구는 내비게이션에 '미륵산성' 대신 '베데스다 기도원'을 검색하면 헤매지 않고 닿을 수 있다. 입구에 무료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구룡마을 인근 마한박물관은 익산에서 꽃피웠던 마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문 공간이다. 2008년 개관 이후 마한의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상설전시 및 특별전, 기획전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국립익산박물관은 다음달 2일 로비에서 무료 '전시홀 음악회'를 개최한다. 첼로 트리오 그룹 '스투페어'가 차이콥스키 '꽃의 왈츠', 파헬벨 '캐논', 피아졸라 '아베마리아', 드뷔시 '달빛' 등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복합문화공간인 '왕궁 포레스트'는 대규모 식물원과 카페, 족욕장, 잔디정원, 갤러리 등을 갖춰 '숲멍'과 '물멍'을 즐기고 전시를 감상하는 휴식공간이다.



익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