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고시원은 올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고 한다. 고시원 총무는 “낡은 건물인 데다 지붕도 슬레이트로 돼 있어 건물 전체가 금방 뜨거워지고 열기도 오래 간다”며 “고시원 안은 완전 찜통이지만 전기료 폭탄 걱정에 에어컨조차 쉽게 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기료 물가지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9.5% 상승했다.
인근 다른 고시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 고시원에선 최근 입주민 10명이 연이어 방을 뺐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에어컨을 가동했는데, 전기요금이 곱절로 나오면서 고시원 주인이 월세를 21만원에서 24만원으로 올린 영향이 크다. 이곳에 사는 A씨는 “30개실에 18명 정도 들어와 살았는데, 월세가 오르니까 많이들 나갔다. 더 싼 곳을 찾아간다고는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21일 비 소식이 있어 폭염은 잠시 주춤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올여름 기온은 이상기온과 엘니뇨의 영향으로 평년보다 높고 습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폭염 취약 환경에 놓인 이들은 특히 다가올 더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30년간 건설현장에서 철근 작업을 해온 김모(59)씨는 최근 하루 두 번 꼭 식염 포도당인 ‘소금 알약’을 챙겨 먹는다고 했다.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서다. 철근을 설계에 맞춰 배열하는 일을 하는 그는 폭염 속에서도 장갑을 두 개나 껴야 한다. 한낮이면 50도까지 달궈지는 철근을 그대로 만졌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엔 작업 도중 쓰러지기도 했다. 동료들이 서둘러 그늘막으로 옮겨 긴급조치를 안 했다면 큰일 났을 것”이라며 “올해도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한여름엔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8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사망자 1명을 포함해 124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온열질환자 92명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온열질환 예방가이드’에 따르면 실외작업장에는 작업자가 일하는 장소와 가까운 곳에 그늘진 휴식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는 노동자들이 잠깐씩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이런 가이드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건설현장에서 14년가량 일한 정모(44)씨는 “휴식 공간이 자체적으로 있는 곳이 많지 않고, 아예 없는 데도 있다”며 “물 한 모금 마시러 가려 해도 거리가 멀어 자주 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백재연 김재환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