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 인터넷에서 “가입하면 코인을 준다”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이벤트 광고를 접한 뒤 코인 투자에 뛰어든 대학원생 A씨(30)는 지난해 5월 12일을 잊지 못한다. 휴대전화 화면 속 가상자산 차트에서, 그가 투자한 코인은 실시간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시가총액 4위의 대형 코인이 알 수 없이 무너지는 모습에 A씨는 식은땀을 흘리다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했다. “그 유명한 ‘루나’ 코인이었다.” 나름대로 수익을 거둔다고 자평해온 그가 그날 하루 잃은 금액만 어림잡아 20억원이었다.
행운과 청산의 지렛대
A씨에게 거래소 인터넷 광고가 눈에 들어온 때는 2021년 2월이었다. A씨는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의 혁신 원리는 정확히 몰랐지만, 주변 모두가 ‘코인으로 돈을 번다’고 말하던 것을 떠올렸다. “나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간의 주식투자 수익금에 부모님으로부터 빌린 돈을 합쳐 30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이 돈은 금세 4000만원, 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당시 가상자산 시장은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호황의 초입이었다.
자신감이 생긴 그의 다음 수순은 ‘선물거래’였다. 가상자산 선물거래란 미래의 코인 가격을 예측하는 것인데, 쉽게 말해 코인 가격이 오를지 떨어질지를 예상해 ‘베팅’하는 것이다. 투자자들 스스로가 ‘홀짝 게임’이라 부르는 이 베팅에는 최대 125배까지의 ‘레버리지(지렛대)’를 설정해 기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예컨대 ‘100배 레버리지’를 사용한 투자자는 코인 가격이 자신의 예측대로 1%만 움직여도 단번에 100%의 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반대로 예측이 빗나갈 경우에는 코인 가격의 동향이 1%만 달라져도 그 자리에서 원금을 모두 잃는다.
위험한 투자를 성공하자 그에게는 큰 돈이 쌓였다. 2배가량의 레버리지를 사용하던 그는 루나에 대해서는 3배를 걸었다. A씨는 지난해 5월 12일에 대해 “3배 걸고 30%쯤 떨어졌으니 청산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던 그는 사흘간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이후에는 작전세력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A씨는 “‘재단’이 물량을 던졌을 수도 있고, 발행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서, 결국 장난질에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한 대폭락을 말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은 A씨도 알고 있다. A씨는 “어디서 규제하는 것이 아니니 호소할 데도 없다”고 했다. 그는 분수에 맞지 않는 돈을 한때 가졌다는 생각으로 루나 폭락의 충격에서 빠져나왔다. 눈앞에서 20억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그는, 의외로 아직도 코인 선물투자를 계속한다. 기자에게 “고배율 레버리지만 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적잖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A씨처럼 초심자의 행운을 맛보고, 점점 큰 수익을 원해 변동성 큰 레버리지 거래에 뛰어들고, 한순간에 쓴맛을 체험하는 흐름을 반복한다. 비트코인 열풍이 크게 불던 2017년 사회인야구 동호회에서 가상자산 시장을 알게 됐다는 유진호(29)씨는 투자 첫날 수십만원의 수익을 거둔 뒤 5년간 가상자산 시장 속에서 살았다. 그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코인에 넣었다. 이후에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휴대폰을 보고, 타석에서 물러난 뒤 휴대폰을 보는’ 일상이었다. 유씨는 스스로 2시간 간격으로 기상 알람을 맞춰 두고 잠을 자지 않았다. 24시간 돌아가는 거래소 화면을 보다가 깜빡 잠들었고, 놀라 눈을 뜨면 휴대폰 화면 속에 거래소 앱이 그대로 켜져 있었다.
유씨 역시 A씨처럼 수익 경험을 통해 투자성향이 과감해졌고, 더욱 큰 결과를 낳는 선물거래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문득 “100만원을 투자해 100% 수익을 거둬봐야 겨우 100만원 버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홀짝 게임’은 늘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수익금이 쌓이다가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자 그는 “기왕 하는 것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큰 돈을 넣고 레버리지 배율을 25배로 높였다. 5년간의 투자 원금과 수익금을 모두 합쳐 새벽 2시에 ‘올인’한 돈은 같은 날 새벽 4시에 사라졌다.
모든 것을 잃은 그 새벽 유씨에게는 현실감이 찾아왔다고 한다. 유씨는 “그때 이길 수 없는 게임임을 깨달았다. 그게 내 마지막 코인 투자였다”고 말했다. 수익을 거둔 뒤 일부를 현금화하며 투자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유씨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투자금을 줄이면 미래 수익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상자산 선물거래로 얻은 교훈은 ‘99번 성공해도 마지막에 1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것이다. 유씨는 더 이상 2시간마다 깨어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도 ‘가성비’ 투자 아닌가”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는 627만명, 등록계정은 1178만개다. 이용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소득이 큰 40·50대가 아니라 30대다. 적잖은 숫자는 손실을 끌어안고도 한풀 꺾인 가상자산 시장에서 버티는 중인데, 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위험성이 큰 시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산증식 수단으로서의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들은 2017년과 2021년처럼 또 한 번 대장주 비트코인이 오르며 급격한 ‘불장’이 올 것이고, 그때에는 후발주자들이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라고 믿는다.
‘원금 반토막’을 수차례 경험하고도 코인 투자를 계속한다는 직장인 김모(30)씨는 “전통적인 예적금은 좋은 상품이라 해도 금리가 연 7%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백억원 넘게 벌지 않는 이상 예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문득 큰 불로소득을 체감해본 경험은 투자자들을 가상자산 시장에 붙든다. 투자자들은 “직장 다닌다고 깝치지 마, 나는 코인해서 돈을 복사한다. 정직하게 사는 게 답이 아니다”는 조롱이 유행한 것을 기억한다.
가상자산 선호 현상이 꾸준한 이유 중 하나는 수익을 거둔 이들이 평범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인다는 점에 있다. 거액의 계좌와 명품, ‘수퍼카’ 사진을 인터넷 공간에 공개하며 투자 수익을 축하받는 이들은 ‘직업이 없는 백수’ ‘평범한 집안’이라는 자기소개를 덧붙이곤 한다. 30명가량의 투자자를 모아 ‘투자 조언방’을 운영했다는 이모(31)씨는 “평범한 사람들 중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고, 영향력이 크다”며 “‘나도 조금만 운 좋으면 슈퍼카 살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다들 달려들게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투자 수익을 거둘 때 그가 매수·매도한 종목을 전부 투자 조언방에 공유했다. 수익을 낸 사람은 30여명 중 단 한 명이었다고 한다.
국민일보가 설문조사로 확인한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평균적 인식은 ‘도박과 투기에 가깝고, 돈을 잃을 위험이 큰 게임’이었다. 인터뷰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돈을 딸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는 점, 투기적 성향이 예로부터 강하다는 점 등이 한국인의 가상자산 열풍 요인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 주식시장에서 한국의 시가총액은 1.5%밖에 안 되지만, 선물과 옵션거래 금액은 한국이 세계 1위를 기록한 적이 많다”며 “자기 소득 범위 내에서 지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동향분석팀장은 “누구도 보증하지 않는 곳에 자산 대부분을 쏟아붓는 건 굉장히 불합리한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김지훈 정진영 이택현 이경원 기자 germany@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