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상자산 투자자 10명 중 6명은 가상자산 투자가 사실상 도박과 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약 18%는 ‘코인 투자’에 빚을 끌어 쓰는데, 각자 2000만원가량의 채무를 가상자산 시장에 투입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시장이 예측 불가능하고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가 만연한 곳이라고 보면서도 향후 수익을 기대했다. 현재까지는 수익보다 손실을 봤다는 이들이 더 많았다.
국민일보는 20일 나우앤서베이와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 투자 중인 성인 215명을 설문조사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코인 투자의 도박·투기 성격을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성격 때문에 투자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215명 중 127명(59.1%)이 “가상자산 투자는 사실상 도박에 해당한다”는 말에 ‘그렇다’고 답했다. 133명(61.9%)은 “투기에 해당한다”는 말에 동의했다.
현재까지의 수익·손실 여부를 묻자 34.4%가 수익을, 41.4%는 손실을 입었다고 응답했다. 극단적으로 100억원 이상의 수익·손실을 말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197명의 응답만 놓고 보면 65명(33.0%)의 평균 수익금은 3962만원이었다. 손실을 입은 이들은 85명(43.1%)으로 평균 5033만원을 잃었다고 했다. 원금을 유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47명(23.8%)이었다.
적잖은 이들이 코인 투자를 도박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대출금까지 투자에 투입하고 있었다. “빚을 가상자산 투자에 활용하느냐”는 질문에 38명(17.7%)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빚 투자 응답자 중에서는 30대의 비중이 높았다. 빚 투자 응답자들이 가상자산 시장에 동원한 빚은 평균 1934만원으로 집계됐다.
가상자산 투자에 몰두하는 이유는 집값에 대한 절망적 인식, 그리고 불로소득 추구로 요약된다. 가상자산 투자 선호 현상의 원인으로 ‘근로소득만으로 안정적 미래를 추구하기 어려우며, 별달리 자산을 증식할 수단이 없다는 현실’을 제시하자 71.9%가 동의했다. ‘불로소득과 고수익을 추구하는 현실’을 제시했을 때에는 66.0%가 ‘그렇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을 “일반 직장인 참가자가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투자하는 배경에는 정상적인 것보다 큰 폭의 수익을 기대하는 성향, 임금 저축으로 주택을 살 수 없게 된 현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가상자산을 사는 행위는 제도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다만 모두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점, 종종 더욱 큰 채무와 무기력증을 남기는 점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된다. 투자 경험이 있는 이모(30)씨는 “번 사람은 번 사람대로, 잃은 사람은 잃은 사람대로 눈이 돌아가는 시장”이라며 “썩은 동아줄을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착각한다”고 했다.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다이아몬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국민일보에 “가상자산은 사기(rip-off)”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슈&탐사팀 김지훈 정진영 이택현 이경원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