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참스승과 알빠노

입력 2023-06-21 04:02

‘알빠노’라는 신조어가 있다. ‘(내) 알 바’와 ‘NO’를 합친 단어로 ‘내 알 바 아니다’라는 뜻이다.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식의 소극적인 의미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굳이 나서야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는 뉘앙스다.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내 책임이 아님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원래 인터넷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당신이 게임을 잘하지 못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니다’는 용도로 쓰였다. 직설적인 표현인 데다 입에 착착 붙는 어감 덕분에 금세 유행을 탔다. 여기에 일부 젊은이들이 저출산이나 비혼, 연금고갈, 소아청소년과 부족 같은 논쟁거리가 거론될 때마다 이 말을 자주 쓰면서 알빠노는 냉소적이고 무기력증에 빠진 한국의 요즘 세태를 드러내는 신조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알빠노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최근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알빠노식 교육을 하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교권이 땅으로 추락하고 학생 인권은 하늘로 치솟아 아동학대범으로 몰릴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 됐다는 내용이다. 글을 보면 교실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난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안 한다. 반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혀도, 욕을 하거나 책상을 뒤엎으며 난동을 부려도 절대 나무라지 않는다. 그냥 작은 소리로 ‘하지 말자~’하고 만다”고 돼 있다. 아이를 훈육한답시고 목청을 높이거나 반성문을 쓰게 했다가는 ‘정서적 아동학대’(글쓴이는 아동 기분 상해죄라고 비꼬았다)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교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호소가 이어진다. 목소리는 한결같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금쪽’이나 ‘소황제’같은 존재가 됐다. 그 아이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안 된다는 학부모들의 성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알빠노 식으로 거리를 두게 됐고 이 때문에 학습권 침해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학교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학생에게 ‘그럼 위험하잖니’하고 나무랐다가 학생 어머니로부터 “아이가 억울하다며 밤새 울었다.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연도 있고 ‘우리 아이는 매운 걸 못 먹으니 급식에서 고춧가루와 마늘을 따로 빼달라’는 문자를 받은 교사도 있단다. 실제로 학생들 싸움을 말리다 책상을 넘어뜨린 담임교사 등을 상대로 학부모가 수천만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정이 이쯤 되니 교사들의 사기 저하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20, 30대 젊은 교사들이 주축인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스승의날을 맞아 교사 1만137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교사의 87%가 최근 1년 새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학교장, 교사가 학업이나 진로, 인성·대인관계 분야에서 학생을 훈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의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잇따르고 교사 개인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믿는 교사들은 거의 없다.

교사는 위대한 직업이다. 아이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쓴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자신의 수락 연설문을 35년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루이 제르맹에게 헌정했다. 청각장애를 지닌 홀어머니 슬하에서 참혹한 가난에 짓눌려 있던 자신을 격려하고 사비를 들여가며 공부시킨 참스승에 대한 최고의 보답이었다. 열정과 책임감은 증발하고 알빠노만 남은 우리의 학교에서 제르맹 같은 참스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 멸종 위기일 것 같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