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믿음 굳게 다졌죠”

입력 2023-06-21 03:00 수정 2023-06-21 03:00
정성학 목사가 19일 충남 천안 그레이스세븐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생전 임종예배에서 인사하고 있다. 정 목사 뒤로 ‘정성학 목사 생전 임종예배’ 문구와 함께 현역 목회자 시절 사진이 보인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가족도 부모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딱 한 번은 아빠를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아빠를 만나면 잘했다 칭찬 한번 해주세요.”

아버지의 임종예배에서 딸이 전하는 추모사에 참석자들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여느 장례식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지만 임종 당사자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점이 이날 예배의 특징이었다.

생전 임종을 맞은 당사자는 정성학(71) 목사. 21세기성경연구원장이기도 한 그는 올 초 제주 기적의교회(김성빈 목사)에서 은퇴했다. 19일 충남 천안시 그레이스세븐갤러리(원장 정마리아 전도사)에서 진행된 ‘생전 임종예배’엔 200여석이 가득찼다. 거의 모두가 사전에 초청받은 이들이었다. ‘밝은 옷을 입고 와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 때문인지 참석자 대부분이 검은 정장 대신 캐주얼한 복장 차림이었다.

정 목사는 예배 시작 전부터 참석자들과 사진을 촬영하며 눈을 맞추고 덕담을 나눴다. 30도 넘는 날씨 탓에 정 목사의 하얀 삼베 옷이 땀으로 젖었지만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예배에서는 유기성 선한목자교회 원로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유 목사는 “생전 임종예배를 오해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정 목사님의 의중은 ‘나는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믿음을 명확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크리스천이 세례를 받을 때 고백하는 ‘이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결심을 청중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사도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라고 했다. 이 고백은 죄의 종노릇 하는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오늘과 같은 생전 임종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 생전 임종예배를 드린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지인과 가족들의 추모사와 회고담에선 감사와 용서의 고백이 오갔다. 정 목사의 딸 정브니엘(기적의교회) 집사는 “오늘이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는 날이라면 굳이 미웠던 날 상처가 됐던 날들에 대한 말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오늘은 그동안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정 목사는 “태어나는 것은 순간이고 사는 것은 잠시지만 죽음 이후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며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생전 임종예배”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예배에 대해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예배를 드리고 나니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며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신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 곁으로 갈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예배에서는 유언장 낭독과 연명치료 포기 각서 및 장기기증 서약서 작성의 순서가 이어졌다. 경기도 양주에서 온 문병하(덕정감리교회) 목사는 “생전 임종예배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어떤 마음으로 와야 하는지 복잡했는데 막상 예배에 참여해 보니 분위기가 활기차고 감동이 있었다”며 “단순한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고 의미 있는 운동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