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차세대 심장’, 주행·안전·충전 혁명 이룬다

입력 2023-06-24 04:06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지난 3월 15일 열린 ‘2023 인터배터리’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삼성SDI 부스를 찾아 2차전지 제품을 상세히 살펴보고 있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뉴시스

글로벌 자동차 생산·판매 1위 기업인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지난 13일 전고체 배터리 탑재 전기차(EV)를 2027년에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연결하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대체한 배터리로, 높은 효율과 짧은 충전시간으로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지금까지 전기차 개발에서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처졌던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를 가장 먼저 상용화해 시장 판도를 단숨에 뒤집겠다는 야심이다.

그러나 배터리 전문가와 업계,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토요타의 이번 선언은 그야말로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전고체 배터리 개발 분야에서 삼성SDI를 비롯한 국내 2차전지 업체들과 퀀텀스케이프 등 미국 업체가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EV의 ‘차세대 심장’

전기차의 심장은 강력한 자성을 띤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이 결합된 배터리다. 전기차 부피의 60% 이상, 부품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충전된 배터리에 연결된 모터가 자동차를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CATL, BYD 등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리튬·인산철·폴리머(LFP) 배터리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한국 업체가 주도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양분해 왔다.

고온 안정성이 뛰어난 LFP배터리는 현재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주로 사용된다. 저렴한 가격이 큰 장점이지만 에너지 밀도가 매우 낮아 주행거리가 짧고, 순간 출력도 약하며 무게도 무겁다. 중국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테슬라는 LFP배터리를 탑재한다.

NCM배터리는 LFP배터리에 비해 가볍고 부피가 작으며 에너지 밀도가 높아 긴 주행거리를 낸다. 순간 출력도 당연히 높다. 현대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드 GM 등 업체들이 주로 사용한다.

두 배터리는 모두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에 액체 상태의 전해질을 사용한다. 두 극재를 붙였다 떼내는 기능을 하며 강력한 자성을 형성토록 하는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바꾼 배터리를 뜻한다.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액체를 없앰으로써 부피를 줄이고 전해질과 양극재 음극재 간격을 좁혀 에너지효율도 더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배터리 크기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액체 전해질이 없어지니 에너지 밀도를 훨씬 더 늘려 주행거리도 한번 완전충전에 1000㎞ 이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고효율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성을 띤 이온의 전도도가 높은 고체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고체 전해질은 이온이 액체를 따라 흐르는 것도 아니고 고체 격자 사이에서 이동하므로 양 극판의 접촉은 최대화하고 접촉면의 저항은 최소화해야 한다. 또 사용하다보면 양 극판의 접촉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싼 제조원가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현재 개발에 착수한 기업들이 내놓은 시제품은 가장 값이 싼 LFP배터리의 10배 이상 가격이고 상대적으로 고가인 NCM배터리보다 4~5배 높은 가격이다.

K배터리 vs 토요타 vs 퀀텀스케이프

전고체 배터리의 꿈은 삼성SDI가 2019년 최초의 시제품을 생산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도 상용화 단계까지 이른 업체는 없는 상태다. 그만큼 가격 문제, 고체 전해질 개발이 난제다.

토요타의 발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개발 경쟁에 불을 지핀 양상이다. 업체마다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인 기술력과 상용화 로드맵을 내놓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체적으로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메탈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삼성SDI는 2025년까지 전고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2027년 양산에 돌입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 회사는 이미 경기도 수원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한 상태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도 특허 확보, 원천기술 개발, 시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말 미국 배터리 개발업체 퀀텀스케이프가 24개층의 금속만으로 구성된 전고체 배터리를 EV용으로 개발해 시제품을 완성했다고 보도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BMW 등은 이 시제품을 EV에 얹어 주행시험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가 이뤄져야 ‘진짜’ EV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가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 배터리 크기가 작아져야 화석연료 차량에 버금가는 인테리어와 다양한 첨단 주행기능을 갖춘 EV, 짧은 충전시간과 주행거리 1000㎞ 이상, 화재 위험 없는 EV가 생산될 수 있어서다.

전 세계 EV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K배터리의 사활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걸려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탄생하면 기존 NCM배터리 시장은 급속도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저가 EV는 값싼 중국산 LFP배터리가, 주요 선진국의 중고가 EV시장은 전고체 배터리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