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PC 시장에서 ‘반쪽짜리’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어서다.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용도가 웹서핑, 영상 시청, 게임 정도인데 중요한 한 축이 사라지는 셈이다. 아무리 아이폰과 맥의 연동성이 좋다고 한들, 게임이 안 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맥북을 추천해도 게임을 하기 어렵다고 하면 이내 마음을 접는 사례도 잦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애플이 반격 카드를 들고 나왔다. 애플은 지난 5일 ‘WWDC 2023’에서 ‘애플 게임 포팅 툴킷’을 공개했다. 윈도OS용으로 발표된 게임을 별다른 이식 과정 없이 애플 실리콘 맥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윈도OS용 게임을 맥용으로 변환하려면 게임의 셰이더, 코드 등을 단계별로 바꿔야 해서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애플 게임 포팅 툴킷을 이용하면 며칠 만에 변환을 할 수 있다.
최근 출시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블리자드의 ‘디아블로4’는 윈도와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용으로 출시됐지만 맥용으로 나오지 않았다. 게임 시장에서 맥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는 애플 게임 포팅 툴킷을 이용하면 맥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맥으로 디아블로4를 구동했다는 후기가 여럿 올라와 있다. 뿐만 아니라 호그와트 레거시, 사이버펑크2077 등의 인기 게임도 애플 게임 포팅 툴킷으로 변환해 맥으로 해봤다는 후기가 등장하고 있다. 게임 개발사가 변환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서 버그 발생 가능성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게임 불모지였던 맥에서 AAA급 게임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PC 시장에서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IT매체 더 버지는 “애플이 마침내 게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애플 게임 포팅 툴킷을 내놓은 것은 맥 사용자도 게임 수요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 게임 개발사들이 맥용 게임을 개발토록 유도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맥OS의 새 버전인 소노마(Sonoma)에선 ‘게임 모드’를 도입해 밀리초(ms) 단위로 성능이 측정되는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게임 모드는 게임이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갖도록 해 더 부드럽고 일관된 프레임 속도로 최적화한 게임 환경을 제공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