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 무죄율 35% 대부분 집행유예,
실형은 10% 평균 형량 고작 15개월
법정 형량 최고 15년인데 양형 기준은 1년∼3년 6개월
2017년 이후 한 번도 안 고쳐
미국 대만 일본 등은 기술유출을 국가 안보로 다뤄
한국의 양형 기준은 너무 안이
국회가 산업스파이 처벌 강화법 만들어도
양형 기준 제때 고쳐 반영하지 않으면 소용없어
실형은 10% 평균 형량 고작 15개월
법정 형량 최고 15년인데 양형 기준은 1년∼3년 6개월
2017년 이후 한 번도 안 고쳐
미국 대만 일본 등은 기술유출을 국가 안보로 다뤄
한국의 양형 기준은 너무 안이
국회가 산업스파이 처벌 강화법 만들어도
양형 기준 제때 고쳐 반영하지 않으면 소용없어
한국 법원은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국가 핵심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대법원 사법연감을 분석한 결과 2017~2021년 5년간 전체 형사사건의 무죄율이 3.0%에 불과한데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의 무죄율은 무려 34.6%였다.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는 10.6%에 불과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실형이 선고된 기술 유출 사건의 평균 형량은 14.9개월이었다.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돼 있는 법정 형량에 비하면 10분의 1이 안 된다. 미·중 패권 경쟁의 여파로 세계 각국이 기술 보호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유출되면서 국가 경쟁력이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을 왜 사법부는 외면하는가.
전경련은 기술 유출 피해액을 한 해 56조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단속과 처벌은 피해액의 10%도 안 된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93건)의 피해액은 25조원이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기술 유출은 적발하기도 어렵고, 적발하더라도 이직과 함께 해외로 도주한 산업스파이를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처벌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모방 범죄를 막기 위한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법원이 산업스파이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배경에는 턱없이 낮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이 있다. 현행 양형기준은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기본 형량을 1년~3년6개월로 제시하고 있다. 가중처벌하더라도 2~6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실제는 감경 사유를 더 많이 반영한다. 초범이라고 봐주고, 피해액 산정이 어렵다고 형을 깎아준다. 감경 사유가 2개 이상이면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돼 있다. 2019년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은 처벌 조항을 대폭 강화했는데 정작 양형기준은 2017년 이후 한 번도 안 바뀌었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이 법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양형기준은 같은 범죄라도 법관마다 선고 형량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07년 처음 도입됐다. 대법원 산하에 설치된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양형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든 법관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법원조직법은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양형기준을 존중하여야 하고,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에는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적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 법관들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법원의 눈치를 보지 않는 판사라면 모를까 양형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판사는 거의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적인 재판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의 느슨한 양형기준은 자국의 기술 보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 대만, 일본 등 주변 국가들에 비하면 너무 안이하다. 미국은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을 간첩죄로 간주하고 있다. 미 연방법원은 지난해 11월 미 항공우주 기술을 빼돌리려다 적발된 40대 중국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메릭 갈란드 미 법무부 장관은 “국가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범죄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지난 4월에는 중국 정부로부터 연구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은 사실을 숨긴 저명한 과학자가 가택연금 6개월과 벌금 5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유력한 노벨화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나노과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던 찰스 리버 당시 하버드대 교수는 캠퍼스에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체포되면서 사회적 평판이 추락했다. 그는 이후 1년5개월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혈액암을 얻었고 교수직을 잃었다. 그는 미신고 세금 3만4000 달러도 납부해야 한다.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만은 지난해 5월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핵심 기술 유출에 경제간첩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일본도 같은 시기에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해 첨단 기술 개발과 보호, 공급망 강화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지금 국회에는 산업스파이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 여럿 계류돼 있다. 이 중에는 국가 핵심기술 유출의 최소 형량을 현행 ‘3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대폭 상향하는 안도 있다. 그러나 국회가 아무리 법을 바꾸더라도 대법원이 양형기준을 제때 고쳐 반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