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연지를 기억하는 이유

입력 2023-06-21 04:02

‘한성부 내 연지(蓮池) 연구’라는 흥미로운 조경학 박사논문을 읽었다. 한양도성 안팎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5개의 연못인 동지(東池), 서지(西池), 남지(南池), 어의동지(於義洞池), 경모궁지(景慕宮池)에 관한 역사적·도시적 맥락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궁궐의 정원을 가꾸고 왕실과 관가에서 사용하는 꽃과 과일을 책임졌던 장원서(掌苑署)가 연지를 관리하며 연꽃 열매인 연방과 연잎, 연근을 진상한 것은 독특했다. 하지만 경복궁 향원정지나 창덕궁 부용지처럼 통제된 구역이 아니기에 당시 연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나들이 공간이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로웠다.

공원이라는 근대의 발명품이 도입되기 전 한양의 나들이 공간은 산과 계곡이었다. 필운대, 세심대, 탕춘대 등 수려한 바위나 수성동, 백운동, 옥류동, 성북동 등 맑은 계곡. 이도 상류층 공간일 뿐 민초들에겐 인근 천변이나 연못이 겨우 그랬을 터. 동묘역 인근의 동지, 독립문 금화초교터의 서지, 남대문 밖 남지, 종로5가 효제초터의 어의동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 경모궁지는 비록 관에서 관리했지만 민에게 허락된 어쩌면 현대의 공원과 같은 평등한 장소였다. 여름내 물 위로 솟은 우렁한 연잎과 향기로운 분홍빛 연꽃이 환상적인.

게다가 연지는 방재(防災)의 공간이었다. 못(池)은 도시에 물(水)을 담고 또 불(火)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홍수 땐 물을 담는 저류조이고 화재 시엔 방화수조다. 여름을 앞두고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10㎝ 빗물 담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호우 시 산과 공원과 호수에 조금씩 빗물을 더 담아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양천구에서 재조성 중인 오목공원 잔디마당도 일시적 저류조가 되고, 온수공원에도 저영향개발(LID)을 적용한다. 슈퍼 엘니뇨까지 언급되며 홍수와 폭염이 교차하지만, 기후위기도 결국 불의 문제이므로 도시 곳곳에 물을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메워져 사라진 연지를 굳이 기억하려는 이유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