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엔저 장중 800원대 터치… 엔화ETF에 뭉칫돈

입력 2023-06-20 04:05

원·엔 환율이 8년 만에 800원대로 떨어졌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는 데다 국내 경기 회복 기대감에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자 엔저 현상이 심화한 모습이다. 역대급 엔저 현상에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주식처럼 쉽게 매매할 수 있는 엔화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대금도 급증하고 있다.

원·엔 재정환율은 19일 한 때 100엔당 897.49원까지 떨어졌다. 2015년 6월 이후 8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엔화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를 기준으로 계산한 재정환율을 낸다. 급락했던 원·엔 재정환율은 서울 외환시장 마감 시간인 오후 3시30분 기준으로는 100엔당 905.21원으로 회복했다. 엔저 현상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 중인 미국 등 주요국과 달리 완화정책으로 일관한 일본 통화정책의 영향이 크다.


엔화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엔화엔선물’ ETF 이날 거래대금은 72억4100만원에 달했다. 이달 들어 해당 ETF 거래대금은 377억원으로, 지난달 전체 거래대금(175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달 말 230억원 수준이던 ETF 시가총액도 현재 402억원 수준이다.

TIGER 엔화엔선물 ETF는 거래소에서 발표되는 ‘엔선물지수’를 기초지수로 추종한다. 국내 증시에서 엔화 관련 ETF로는 유일하다.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어 매매가 수월한 데다 운용 보수도 연 0.25% 수준이다.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사거나 팔 때 환전수수료를 따로 낼 필요가 없다. 간편하면서 엔화 상승 시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엔화 흐름과 연동된 ETF 투자 수요는 늘고 있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상장했던 TIGER 일본엔선물레버리지, TIGER 일본엔선물인버스, TIGER 일본엔선물인버스2X 등은 2021년 초 유동주식 수가 부족해 상장폐지된 바 있다. 그동안 엔화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지만 최근 엔테크 관련 수요가 폭발하며 유일하게 남은 TIGER 일본엔선물 ETF가 나 홀로 수혜를 입은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엔화에 대한 관심 증가에 관련 상품을 고려하고 있지만 빠르게 대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엔화 예금 잔액도 이달 15일 기준 8109억7400만엔으로 지난해 6월 말 대비 38% 증가했다. 환차익 기대에서 비롯된 ‘엔테크(엔화+재테크)’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일본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하반기 중 일본 중앙은행이 긴축 기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푼 돈을 거두면 엔화 가치는 상승한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물가 상황 등을 고려하면 하반기엔 엔화가 강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