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해외 용사들 이동 불편 덜자”… 내년부터 찾아간다

입력 2023-06-21 03:06
6·25전쟁 참전용사 전사자 및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한·미 참전용사 초청 보은 및 전몰장병 추모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전사·실종한 가족들의 사진을 들고 예배당으로 입장하고 있다. 새에덴교회 제공

2007년부터 올해까지 17차례에 걸쳐 이어져온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초청 행사는 수많은 ‘만남’이 만들어낸 이야기보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만남은 이내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잊힌 전쟁’으로 불리던 6·25전쟁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고, ‘잊힌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곱씹게 만들어줬다.

교회는 올해를 기점으로 중대한 변화를 모색한다. 고령의 해외 참전용사들이 더이상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 내년부터 참전용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동안 방한한 참전용사들은 저마다 가슴 뛰는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었다.

1회 행사에선 소강석 목사에게 처음 참전용사들의 희망사항을 전한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씨를 비롯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일본계 미국인 미야무라 히로시 전 예비역 하사가 한국을 찾았다.

분대장이던 미야무라는 1951년 4월 24일 밤 경기도 연천에서 전초기지를 방어하던 중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야간 공격에 분대원들이 부상을 입자 그는 이송을 지시한 후 홀로 남아 중공군과 싸웠다. 미야무라는 어둠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점을 역이용해 총검으로 중공군 10명을 사살한 뒤 진지로 복귀해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40명의 적을 더 사살했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뒤 포로로 붙잡혀 28개월 동안 수용소에서 지내다 휴전 한 달 뒤 풀려났다.

미국 참전용사 로렌조 오르테카씨와 한국 참전용사 김영헌씨는 2회 행사에서 재회했다. 둘은 1951년 전투 중 북한군의 추격을 피해 사흘 동안 동고동락했던 전우였다. 이듬해 한국에서 열린 3회 예배에는 한·미 양국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가 전해졌다. 참전용사를 위한 보은 행사가 국격을 높이는 등 국가적으로도 비중있는 행사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6회 행사에는 6·25전쟁 때 한 부대에서 복무했던 안토니·토마스 베조스카 형제가 함께 방한했다.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던 2013년 7회 행사에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태국, 튀르키예 참전용사와 가족 등 97명이 대거 방한했다.


이듬해에는 새에덴교회 관계자들이 미국 시카고 그린베이연방 보훈병원을 방문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 현지 병원 관계자는 “33년 동안 병원에서 일했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았던 나라의 국민이 직접 찾아온 일이 없었다. 정말 반갑고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확산으로 행사가 한 달 순연됐던 9회 행사에서는 1953년 강원도 철원 ‘철의 삼각지대’ 올드 밸리 전투에 투입됐던 미 7사단 31연대 소속 존 햄필 중대장과 콜롬비아 출신 벨라스코 병장이 62년 만에 재회했다.

2016년에는 한국 참전용사 300여명을 비롯해 미국 참전용사와 가족 18명을 비롯해 전사자와 실종자, 포로 가족도 30여명이 방한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의 영웅 리처드 캐리 예비역 미 해병 중장이 한국을 찾았다. 초대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월튼 워커 대장의 손자 등 유가족도 참여하면서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보은행사는 그야말로 ‘참전용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8년 12회 행사에는 흥남철수작전 시 미 육군 제10군단장이었던 에드워드 알몬드 중장과 상륙전 참모장 에드워드 포니 대령, 수송함에 피란민을 태워야 한다고 설득했던 현봉학 박사 후손들이 대거 참여했다.

흥남철수작전을 수행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러니 예비역 해군 제독도 교회를 찾았는데 탈출 당시 14세 나이로 그 배에 탔던 김영숙 수녀와도 해후했다. 둘은 목숨을 걸고 탈출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한동안 잡은 손을 놓지 않아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2019년에는 장진호 전투 희생자 유해 발굴이 진행됐다. 발굴된 유해 중 장진호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하비 스톰스 소령도 있었다. 그는 미 육군 제7보병사단 31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지만 1950년 12월 1일 혹한 속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34세이던 스톰스 소령은 넷째 아들을 임신한 아내와 아홉살짜리 장남인 샘 등 3형제를 두고 있었다. 마침 스톰스 소령의 자녀들이 13회 행사에 참석해 참전용사 보은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지난 18일 열린 17회 행사에서는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이후 처음 참석한 박민식 장관이 6명의 미국 참전용사들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전달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