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했다. 좋은 얘기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단 중 하나였던 국회의원 불체포 조항은 부패·비리 정치인의 사법처리를 막는 방탄에 악용되며 시대착오적 특권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국민 절대다수가 불체포 특권 폐지를 원하고 있고, 무엇보다 정치인들 스스로 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숱하게 외쳐 왔다. 이 대표 역시 지난 대선에서 이를 공약하며 그 대열의 선두에 섰던 터라 당연히 이렇게 말해야 하는 일이었다.
좋은 얘기이고 또 당연한 얘기인데,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오니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대표가 압도적 의석의 민주당 당권을 잡은 뒤 부패·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민주당 의원 4명이 이 특권을 방탄막으로 악용했다. 돈을 받고 돈을 뿌린 혐의가 고스란히 녹음되고도 체포를 면한 의원들과 함께 이 대표 역시 그 방탄의 대표적 수혜자였다. 민주당이 유일하게 통과시킨 체포동의안은 여당 의원 것이다. 공약을 정면으로 어기며 불체포 특권을 ‘내로남불 방탄’에 악용해놓고, 이제 와서 대단한 결단인양 특권 내려놓기를 말하고 있다.
그래도 그간의 방탄 행각을 반성하는 취지라면 긍정적 변화인데, 그렇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불체포 권리”란 표현을 썼다. 유권자의 인식을 담아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불체포 특권’ 대신 어감도 생소한 ‘불체포 권리’란 용어를 굳이 택해 포기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썼던 불체포 권한은 특권이 아닌 정당한 권리였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 대표의 돌연한 특권 포기 선언이 이런 한계를 넘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동안 부결시킨 4건의 체포동의안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다음 구속영장만 기다릴 게 아니라 이미 국회에 여럿 제출돼 있는 불체포 특권 포기 법안을 어서 통과시키기 바란다.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던 다수의 힘이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