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 나라의 큰 자

입력 2023-06-21 03:03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대 ‘사치품’ 소비국이라고 합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들은 한국의 명품 수요 원인이 구매력 증가와 사회적 지위를 겉으로 과시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MZ세대는 한국 내에 만연한 서열문화 위계질서 등에 염증을 느끼고 이에 반대하는 세대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뉴스 기사는 한국 사회 내 서열문화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약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이러한 한국 사회 내의 서열문화의 기원을 유교에서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타락한 죄성에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끊임없이 세상의 큰 자가 되어 큰 자로서 권리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자리에 ‘나’라는 우상을 세우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생과 아버지 그리고 지도자라 칭함 받지 말라 이야기하십니다. 우리가 고사성어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군사부일체는 군주와 스승,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말로, 모든 사람은 저 세 인물에게 똑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똑같이 충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모 스승 리더의 중요성을 모르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일부러 저격하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인간의 죄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유교를 넘어 모든 인간은 임금과 신하, 선생과 제자, 아버지와 자녀와 같은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에서부터 갑과 을을 상정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복종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세상 나라는 계속해서 존경과 충성을 받을 위치를 강조합니다. 큰 자와 작은 자의 태도를 따지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충성이나 존경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지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구분하고 아랫사람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행위는 세상 나라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걸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존경의 가치를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존경은 수직적인 지배, 복종 관계에서 중요시하는 덕목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존경으로 막혀있는 담을 허물고 그 가운데 사랑이라는 새로운 통로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 형제 사랑은 예수님의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존경받길 원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은 위선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 더 윗사람처럼 보이고자 자신을 치장하고 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마 23:5) 그러나 서로 형제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형제는 서로 존경하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모습의 인간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충성과 존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아랫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선생과 아버지와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큰 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 속에 살지 않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의 방식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생으로 아버지로 왕으로 고백하면서 스스로 선생과 아버지와 왕의 자리에 앉기에 힘쓰기보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춤으로 ‘하나님 나라의 큰 자’ 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윤하진 목사(상승교회)

◇상승교회는 대한민국 최전방의 중부전선을 수호하는 7사단 8여단의 군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