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넘버 원 미술시장이자 미술시장의 바로미터인 스위스 아트바젤이 코로나19 이전인 4년 전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13일(현지시간) VIP 개막 첫날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가 2250만 달러(약 297억원)에 팔리고 유럽은 물론 한국 등 아시아 컬렉터들이 대거 몰리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메이저 갤러리 관계자들은 "시장이 정상화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바젤은 이날부터 이틀간 미술관과 슈퍼 컬렉터 등 VIP 개막에 이어 15일부터 18일까지 일반 관람객을 맞았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행사는 지난해에도 열렸지만 마스크가 의무화 되지 않고 열리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현장을 16∼18일 다녀왔다.
해외 정상급 총 출동
스위스에서 출발한 하우저앤워스 갤러리는 1996년 제작한 부르주아의 ‘거미 Ⅳ’가 2250만 달러에 새 주인을 찾았다고 밝혔다. 거미 조각은 대형 야외 작품이 아이콘이지만 이번 페어에 선보인 작업은 실내 벽에 걸 수 있는 가로 2m, 세로 1m60㎝의 소형 작업으로, 브론즈로 만들었다. 하우저앤워스는 또 필립 구스통의 1975년 작 회화 ‘포 헤즈(Four Heads)’를 950만 달러(121억원), 조지 콘도의 2009년 회화를 550만 달러(70억원)에 파는데 성공했다. 영국의 간판 화랑인 화이트 큐브는 미국 원로 작가인 마크 브레드포드의 대형 회화 ‘더 레스 커먼 로열니스(The Less Common Royalness)’(2014)를 450만 달러(57억원)에, 페이스 갤러리는 알렉산더 칼더의 소형 조각 중 1976년 무제를 280만 달러(35억원)에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칼더 작품 거의 대부분을 솔드아웃 시켰다. 데이비드 즈워너도 앨리스 닐의 인물화 ‘에디’(1968)를 280만 달러(35억원)에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노아 데이비스, 로버트 라이만,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작업을 모두 100만 달러 이상에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갤러리현대 15년만에 재입성
바젤에는 세계 정상급 갤러리 284곳이 참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한국 갤러리는 겨우 2곳이다. 국제갤러리가 지속적으로 참여한데 이어 올해는 갤러리현대가 2008년 이후 재입성하는데 성공했다. 갤러리현대는 판매 행사장임에도 마치 전시장처럼 이우환과 박영숙의 2인전 형식으로 부스를 꾸몄다. 이런 노력 덕분에 갤러리현대는 미국 온라인플랫폼 아트시가 선정한 ‘2023 아트바젤 베스트 부스 10’에 선정됐다. 이우환의 단독 회화 작품 2점과 테라코타 작품 여러 점을 비롯해 이우환이 도예가 박영숙이 제작한 접시와 달항아리 등 도자에 그림을 그린 협업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생존 한국 작가로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이우환은 1979년부터 박영숙과 공동 작업을 해왔다. 갤러리현대 측은 전통 청화와 철화 기법을 살린 달항아리 회화(60만 달러), 단독 테라코타 작품 (7만 달러) 등 총 8점 이상 299만 달러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밝혔다.
국제갤러리는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양혜규, 이기봉, 장 미셸 오토니엘 등 전속 작가를 총 출동시켜 작가마다 좋은 판매 성적을 거뒀다. 이우환의 ‘대화’(2020)가 71만5000달러에 팔렸고, 박서보의 ‘묘법’ 도 2점 이상 팔렸다.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의 작품이 복수의 해외 갤러리 부스에도 걸려 ‘한국 최고가’ 이우환의 가치를 실감케 했다. 프랑스 메너(Mennour) 갤러리는 이우환의 ‘바람’ 연작과 ‘대화’ 연작을 내놓았다. 이중 ‘바람’이 150만 달러에 팔렸다고 했다. 이 갤러리 대표는 “약 15년 전 파리에서 이우환을 만났다. 그의 철학적 사유와 모노하(物派)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반했다”며 인연을 소개했다. 이 갤러리는 2014년 베르사이유 이우환 개인전 개최와 프랑스 남부 아를의 이우환미술관 개관에 관여했다고 했다.
페이스를 비롯해 한국에 진출한 타데우스로팍, 리만머핀, 글래드스톤 등 외국 갤러리도 바젤에 부스를 차려 선전했다. 타데우스로팍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대형 회화(280만 달러),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대형 회화(150만 달러) 등을 팔았다. 갤러리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아시아 컬렉터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미술사 거장 작품 줄줄이
스위스 바젤의 공기는 다르다. 아시아인이 주요 컬렉터인 홍콩 바젤과는 컬렉터 취향이 다르다. 프리즈아트페어와도 차이가 난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인 영국의 프리즈아트페어가 지난해 한국에 상륙했다. 프리즈는 컨템퍼러리가 강점이라 20세기 미술사 거장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지난해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서울에서 600억원 피카소의 걸작 한 점이 걸린 것 자체가 뉴스였을 정도다. 하지만 서구 중심 미술사의 본토인 유럽 바젤에서는 피카소의 작품을 아퀴벨라 갤러리, 헬리 나흐마드 갤러리 등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뉴욕 기반의 헬리 나흐마드에는 피카소 작품이 350만 달러∼1100만 달러짜리 대여섯 점이 걸려 있었다. 이 가운데 950만 달러 인물 초상화가 판매됐다고 갤러리 측은 밝혔다. 이밖에 갤러리마다 리처드 세라, 브루스 나우만, 윌리엄 켄트리지 등 현대미술사 교과서에 거론되는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줄줄이 나와 바젤 아트페어는 그 자체로 탁월한 볼거리가 된다.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회화, 미국 사진작가 신디 셔먼의 회화 등 홍콩 바젤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페미니즘 작가들의 도전적인 작품을 볼 수 있는 점도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가 가지는 매력이다. 휠체어 관람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 이동권이 보장된 유럽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전위적인 ‘언리미티드 섹션’
갤러리들의 판매 부스와는 별도로, 상업적인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 별도 대형 공간에 마련된 전시인 언리미티드 섹션에서는 정돈된 느낌이 나긴 하지만 비엔날레 분위기도 맛볼 수 있다. 노란색 플라스틱 조각들 이어 붙여 천장에 늘어뜨림으로써 구스타프 클림프의 회화를 조롱하는 듯한 가나 출신 설치미술가 세르케 클로티의 작품 등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세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형 작품들이 스펙터클하게 전시돼 있다. 케냐 작가 칼로키 나야말은 글로벌 위기를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을 삼각형으로 맞대어 대형 조각처럼 설치했다. 아프리카 출신 영국 작가 잉카 쇼시나레가 아프리카 독립 운동가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도서관 책 작업, 러시아 작가 파벨 페퍼스타인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서사적인 수채화 ‘자유의 노래’ 등 흥미로운 작업이 적지 않다. 갤러리현대의 경우 인기 작가 류준열을 캐스팅한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환경 주제 영상 작업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하게 나왔다. 참여 작가는 현대미술사에 거론되는 설치 미술가 브루스 나우만(82) 같은 원로 거장부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 셀마 셀만(32) 같은 30대 여성 작가까지 연령대의 스펙트럼도 넓다. 셀만은 벤츠 문짝에 그린 회화로 2022년 카셀도쿠멘타에 초대받았던 신예로 결국 가장 전위적인 작가가 시간이 흘러며 상업시장에서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아트바젤은 언리미티트 섹션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바젤=글·사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