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승자와 패자만 남기는게 아니다. 아픔과 고통, 씻을 수 없는 상처도 남긴다. 6·25 한국 전쟁의 참전용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방방곡곡에서 삶을 이어가는 참전용사들은 저마다 상처와 후유증을 안은 채 말년을 보내고 있다. ‘잊혀진 전쟁’의 엑스트라로 사라져가는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 건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였다. 2007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위로해온 이 교회의 ‘특별한 섬김’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보훈섬김 사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17번째를 맞는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보은행사는 내년부터 ‘찾아가는 보은 행사’로 전환된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참전용사들과 동행해 온 새에덴교회의 17년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보은은 국민의 품격을, 보훈은 국가의 품격을 보여 줍니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6·25전쟁에 참전해 자신을 희생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참전 용사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기도 하다. 새에덴교회 교인들이 참전용사들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하고 희생의 가치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건 담임목사의 한 경험에서 시작됐다.
2007년 1월 15일 소 목사는 마틴루터킹 재단이 수여하는 ‘마틴루터킹 국제평화상’ 수상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다. 당시 ‘마틴루터킹 퍼레이드’ 전야제에 참석한 소 목사에게 한 흑인 노인이 찾아왔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노인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후 소 목사는 그가 “동두천, 의정부, 수원, 평택…” 등 우리나라 도시명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노인은 6·25전쟁 참전용사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줬다.
“한 번쯤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꼭 초청하겠다”고 약속한 소 목사는 생존해 있는 해외 참전용사를 한국으로 초청하기로 마음먹고 교회에도 뜻을 전했다. 교회는 그해 6월 소 목사에게 영감을 준 참전용사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1921~2013)씨를 비롯해 50여명의 참전용사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소 목사는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투철한 국가관과 역사의식을 통해, 또한 대형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환원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국내외 참전용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헌금하며 행사에 들어가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직접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헌신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죠.”
교회는 무려 17차례에 걸쳐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이어왔다. 2011·2013·2014·2022년에는 한 해 두 차례 초청 행사를 열었다. 올해에는 세 차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만나기 어려웠던 2020·2021년에는 줌(Zoom)과 메타버스를 활용해 온라인으로 전 세계 참전용사와 만났다. 그동안 교회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호주 필리핀 태국 튀르키예 콜롬비아 등 8개국에서 연인원 6000여명의 참전용사를 직접 만나 보은행사를 베풀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단일 교회가 17년 동안 전 교인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전 용사와 유족 및 가족들을 섬긴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추모의 벽’ 준공식이 열렸다. 추모의 벽에는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인 카투사 7174명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추모의 벽은 한국군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미국 내 첫 기념물이다. 새에덴교회는 추모비 건립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기금을 전달했다.
미국은 준공식에 소 목사를 비롯해 교회 관계자 30여명을 초청했다. 당시 준공식에는 한·미 양국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비롯해 6·25전쟁에 참전한 21개국 대사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소 목사는 추모시 ‘꽃잎의 영혼들이여, 사무치는 이름들이여’를 낭독했다. 민간인으로는 유일한 순서자였다.
새에덴교회의 헌신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참전용사들에게는 희망과도 같았다. 정전 70주년을 맞는 올해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가족을 위한 보은 행사는 뜻깊게 다가왔다. 18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한·미 참전용사 초청 보은 및 전몰장병 추모예배에 참석한 미국 참전용사 폴 헨리 커닝햄(93) 전 미국 한국전참전용사회 회장은 “지난 70년 동안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지만 감사할 것이 더 많다”면서 “새에덴교회가 한국 전쟁이 잊힌 전쟁이 되지 않게끔 큰 노력을 해왔다. 우리 참전용사 가족은 새에덴교회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