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숨진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에게 수술을 받거나 치료를 받았다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온라인에 글을 올리고 그의 사망 기사에 댓글을 달며 슬픔을 표시하고 있다.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보호자는 “임종 준비하라던 동생을 두 번이나 살려주신 분”이라고 했고, 다른 보호자는 “정말 생뚱맞게 회진시간이 아닌 새벽 시간이나 아무 때나 출몰하시면서 환자를 돌보셨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는 “지금까지 수백 수천명을 살리셨고, 앞으로도 수천명을 살리셔야 할 분이 이렇게 떠나셨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한 의사의 죽음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심장혈관흉부외과 의사였기 때문일 게다. 그는 환자의 가슴을 열고 박동이 희미해지는 심장을 다시 벌떡벌떡 뛰게 하는,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을 운반하는 대동맥에 생긴 문제를 해결해주는 의사였다.
상가 건물마다 발에 차이듯 많은 게 병원 간판이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살려내는 의사는 찾기 힘들다는 인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이를 달래고 예방주사를 놓아줄 소아과는 많으나 급박한 치료가 필요한 소아중환자실은 당직근무를 설 의사가 없어 문을 닫고 운영시간을 줄인다는 뉴스를 접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응급환자를 위해 병원 옆에 살면서 시간에 상관없이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던 의사가 목숨을 잃었다니….
주 교수는 말이 많지 않은 의사였다. 그가 오래전 어머니의 심장판막수술을 했고, 지금껏 계속 주치의였기 때문에 6개월에 한 번씩은 그를 만났다.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실을 찾을 때마다 그가 먼저 건네는 말은 “좀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전부였다. 어머니가 몸의 변화와 증상을 얘기하면 그는 청진기로 심장 박동을 확인한 뒤 모니터를 보고선 “검사 결과는 좋습니다. 심전도도 괜찮고. 다음에는 혈액검사 안 하셔도 되겠어요”라고 안심시키며 처방을 내려주곤 했다.
그러던 주 교수가 지난 3월 진료 때는 한두 마디 더 말을 건넸다. “수술하신 지 10년이 되셨네요. 다음번에는 심장초음파 검사 하시죠. 당일 결과 들으시려면 좀 더 일찍 출발하셔야겠지만….” 남도 끝자락에서 새벽에 출발해 진료를 받으러 오는 팔순 할머니의 수고를 근심하는 말이었다.
기자들도 기사를 쓰기 위해 그가 쓴 글, 그가 한 말들을 수소문했다. 말이 많지 않은 그의 흔적을 뒤져 겨우 찾아낸 것이 2015년 아산병원 소식지에 쓴 글이었다. 그는 글에서 “흉부외과 의사는 공휴일 구분 없이 항시 응급수술을 위해 대비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가 크고 육체적으로도 버겁다”면서도 “하지만 수술 후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될 때 가장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수술할 때까지 힘들었던 일을 모두 잊는다”고 했다.
주 교수가 어머니에게 “울산(울산대병원)에 제자가 있는데 그쪽이 더 가깝고 편하지 않으세요?”라고 권유해 한동안 울산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년여 후 어머니는 서울행을 고집했다. 2016년 태풍 차바 당시 병원에 가려다 침수된 울산을 헤매셨던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당신을 수술한 의사가 아무래도 더 믿음직스러웠던 듯했다.
“사람이 띤띤하잖아”라고 어머니는 언젠가 주 교수를 평했다. ‘띤띤하다’는 ‘딴딴하다’의 경남 사투리로 살갑지는 않지만 믿음직스럽다는 의미다. 어머니에겐 아직 주치의의 부고를 전하지 못했다. 차차 말씀드리려 한다. 다음 진료일인 9월에 어머니는 아마 다른 의사를 만나야 할 것이다. 주석중 교수의 명복을 빈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