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처음에는 이해 안 되는 시장의 모습이 꽤 많다. 가게가 몰려 있는 것이 그중 하나다. 가게는 퍼져 있을수록 좋다. 서울시의 모든 편의점이 종로4가에 몰려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편의점은 서울시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다. 아무 때나 집에서 슬리퍼 끌고 가 음료수 한 병 들고 올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구점은 왜 몰려 있나? 수산시장과 꽃시장은 왜 똑같은 활어가게와 꽃가게가 모여서 만들어졌을까?
강남 논현동과 강북 아현동에는 가구점이 몰려 있다. 분당, 일산 등 신도시에도 가구점은 모여 있다. 소비자를 생각하면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가구의 구입 패턴을 생각하면 이해된다. 책상, 침대, 옷장, 식탁 등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대부분은 처음 들어간 가구점에서 잘 구입하지 않는다. 적어도 넷 또는 다섯 곳은 돌아다닌 후 구입할 가구를 결정한다. 가구점 주인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소비자가 편하게 가구를 구경하도록 몰려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쓰는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소비자의 탐색(search)을 도와주고 그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가게가 몰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어가게와 꽃가게는 왜 몰려 있을까? 소비자의 탐색을 도와주기 위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부산 자갈치 수산시장의 활어가게는 다 그게 그거다. 활어도 똑같고, 가격도 사실상 거의 같다. 특별히 탐색할 것도 없다. 그러면 왜 몰려 있나? 활어의 신선도(新鮮度)를 높이기 위해서다. 한곳에 위치한 많은 가게로 활어를 한꺼번에 공급해야 수산물이 싱싱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공급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꽃시장과 화훼시장도 마찬가지다. 대량으로 공급되는 화훼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곳에 위치한 많은 가게에 한꺼번에 풀어 놓아야 훨씬 꽃의 수명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가구점이 소비자의 탐색이라는 수요 측 요인으로 몰려 있고, 활어가게가 신선도라는 공급 측 요인으로 몰려 있듯이 옷가게, 전자상가, 공구상가, 조명기구 가게, 한약재 상가, 축산시장 등도 나름의 수요 측 요인과 공급 측 요인 또는 두 요인의 복합적 조합에 따라 이런저런 모습으로 몰려 있는 것이다.
요즘 호텔에서는 미니바가 사라져가고 있다. 호텔 방에 들어가면 각종 주류와 음료수로 가득 찬 작은 냉장고를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중 음료수 한두 개를 마시려고 그 가격표를 보게 되면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기억을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호텔이 미니바로 엄청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미니바는 호텔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텔 방마다 냉장고를 돌면서 빠진 음료수를 채워놓고 투숙객이 무엇을 마셨는지 확인해서 프런트에 알리고 하는 데 인건비가 훨씬 더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호텔에서 음료수 자판기를 복도에 들여놓거나 아예 편의점을 운영하기도 한다.
시장의 모습은 우리의 직관이나 상식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런 시장의 모습에 겸허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시행착오와 경험이 그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잣대와 판단으로 시장을 평가하고 설계할 때 뜻대로 되지 않고 큰 낭패와 좌절을 맛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정부의 인위적 규제와 기준이 오히려 시장을 망치고 거래를 급감시키기도 한다. 시장의 모습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시장의 모습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시장은 경제학자의 상상력을 항상 뛰어넘는다. 정부도, 기업가도, 경제학자도 시장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