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법무부는 자국의 주요 기술을 중국·이란 등으로 탈취하다 적발된 5건의 사건을 공개하고 이에 연루된 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 정부는 지난 2월 적대국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자국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법무부를 중심으로 연방수사국(FBI), 상무부, 주요 지방검찰청 등이 참여한 범정부 합동수사단인 ‘혁신기술타격대(Strike Force)’를 조직했다. 이번 사건들은 혁신기술타격대 구성 이후 첫 결과물로, 자국 기술이 해외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내 삼성전자 공장 주변에서 중국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이 서성이는 광경을 간혹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반도체 개발 분야 고급 인력을 직접 접촉해 스카우트하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에는 중국의 해외 인력 영입이 미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중국계 또는 중국인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최근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 미국 인력 영입이 힘들어지자 중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정학(Geo-politics)의 국제질서가 기술이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기정학(Tech-politics)의 국제질서로 재편된 지 오래됐다. 기술패권 경쟁시대에선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지키는 일이 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얼마 전 국내 기업의 디스플레이 제조 자동화 기술을 무단 반출한 후 중국 경쟁업체로 이직한 피해 회사 전직 연구원을 경찰이 검거했다. 최근 5년(2018~2022년) 경찰에 적발된 기술유출 사건은 총 557건인데, 이 중 해외 기술유출 사건이 70건으로 전체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우리 기업의 기술과 인력이 해외로 넘어가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기술유출 범죄는 일단 기술이 유출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데다 막대한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기업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이 유출되면 피해 기업이 사업을 접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기술개발 동기를 꺾어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는 것은 피해 기업을 넘어 국가의 이익을 해친다. 작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는 기술유출에 따른 우리나라의 연간 피해 규모를 약 56조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유출된 국가는 최소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보는 반면 탈취한 국가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 해외 기술유출이 ‘현대판 매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청은 산업기술유출범죄 전담수사팀을 2010년 발족한 이후 조직·인력을 확대해 현재 전국 시도경찰청 산하 22개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을 운영 중이다. 작년 12월에는 경찰청 내 기술유출 대응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기술유출 피해신고 접근성 제고를 위해 203개 경찰서에 산업기술유출신고센터를, 57개 경찰서에는 안보수사팀을 설치했다. 올 2월부터는 기술유출 범죄를 포함한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실시 중이다. 하반기엔 기존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을 수사대로 격상하고, 시도경찰청 수사 인력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50%가량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경찰에서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이런 범죄 예방 효과는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새로 출범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최근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을 수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고무적이다.
신기술 경쟁, 핵심 인력 확보 경쟁에서 밀리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제껏 그래왔듯 경찰은 기술유출 범죄 대응을 위해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다. 국민의 많은 관심과 따뜻한 성원을 부탁드린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