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6년 전 매각한 SK증권이 올해에도 그룹 계열사 회사채 발행 5건 중 4건을 대표주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증권이 사모펀드에 매각된 이후에도 SK그룹의 금융 계열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매각 이후 합법적으로 SK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받은 SK증권을 놓고 무늬만 SK그룹과 분리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은 올 들어 이달 5일까지 SK그룹이 발행한 일반회사채(SB) 56건 중 80%에 이르는 45건을 대표주관했다. 회사채 발행 시 여러 증권사가 공동으로 대표주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SK 계열 회사채 발행을 두 번째로 많이 대표주관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21건)으로 SK증권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SK그룹 계열사의 누적 회사채 발행액은 7조5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SK증권이 대표주관사로 포함된 건의 발행액은 6조2300억원으로 약 83%를 차지했다. 통상 공동 대표주관 시 증권사들이 거의 동일한 비율로 물량을 나눠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SK증권의 SK그룹 회사채 발행액 점유율은 약 36%(2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같은 기간 SK증권의 일반회사채 전체 대표주관 금액(3조3000억원)의 80%가 넘는 수준이다.
이는 SK증권이 실질적인 SK그룹 계열사로 기능하고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앞서 SK그룹은 2018년 3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SK증권을 매각했다. ‘일반지주회사는 금융이나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 주식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공정거래법에 따른 것이다. SK그룹은 2007년 지주회사 전환 후 4년 유예기간을 거쳐 2011년에 SK증권을 매각해야 했지만 SKC가 보유한 지분 대량매매(블록딜)과 지주회사 울타리 밖에 있던 SK C&C에 지분을 매각하는 등 금융지주회사 법안 통과 가능성에 주목하며 매각 시기를 미루기도 했다. 결국 사모펀드인 J&W파트너스가 SK증권을 인수했지만 이후에도 SK증권은 사명 사용기한을 연장해오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대표주관은 인수 업무에 비해 리스크가 적고 수수료가 높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이 선호하는 업무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가 같은 그룹 계열사가 발행하는 회사채 주관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SK그룹에서 빠져나온 SK증권은 SK그룹 계열사의 자금조달 주관사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합법적인 ‘일감 몰아주기’ 속에 전체 시장 점유율이 1%대에 불과한 SK증권의 올해 일반회사채 대표주관 점유율은 10%에 이른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이 1%대 초중반에 머무는 증권사가 회사채 대표주관 순위에서 4~5위를 차지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