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이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를 통해 자금을 공급한 기업 중 17곳이 횡령, 부실 등으로 거래정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화전기의 횡령·배임 사건을 계기로 부실기업의 ‘자금 연명’을 돕거나 불공정 거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국내 CB·BW 시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8일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스닥상장사 이화전기는 지난달 김영준 이화그룹 회장의 횡령, 배임 혐의로 인한 거래정지 조치가 이뤄졌다. 그런데 메리츠증권은 거래정지 직전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메리츠증권이 이화전기 BW 지분의 전량 매각과 이화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이아이디 BW의 일부 지분 매각으로 얻은 시세 차익은 238억원에 달한다. 메리츠증권 측은 이화전기의 신주인수권 최초 매각 시점이 4월 20일로 김 회장의 구속과 이화전기의 매도 결정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메리츠증권이 2019~2023년 투자한 CB·BW 중 횡령, 부실 등으로 거래정지된 기업은 이화전기를 포함해 17곳에 이른다. 거래정지 사유는 부도 및 회생절차, 법정관리, 감사의견 거절, 횡령 배임 등이다. 셀리버리, 휴센텍 등 일부 기업은 상장폐지 위기에 처한 상태다. 메리츠증권이 CB,BW 투자를 통해 이들 17개 기업에 공급한 자금은 모두 7800억원이다.
국내 사모 CB 시장의 규모는 연간 7조원을 웃돈다. CB는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을 가리킨다. BW는 미리 약속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채권이다. 기업은 이들 채권을 발행해 비교적 싼 이자를 내고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다. 당초 국내 CB, BW 시장에 기대됐던 역할은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들의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규제 공백에서 발생했다. CB, BW는 주가 하락 시 전환가격이나 행사가격을 더 내리는 방식의 재조정이 가능한데, 하한선 기준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이화전기 BW의 행사가격은 최초 발행 당시(2029원)와 비교해 마지막 매도 직전에 70%가량 조정됐다. 메리츠증권은 이화전기의 거래정지 직전 지분을 처분했고 더 싼 값에 신주물량을 대량 내놓으면서 손실을 피했다. 부담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기존 주식 가치가 떨어진 탓이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이화전기를 포함해 CB와 관련한 불공정거래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