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기 목사의 플랜팅 시드] <13> 따뜻한 피난처가 되자

입력 2023-06-20 03:05
미드저니

충남 서산에는 대를 이어 묵을 만드는 곳이 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맛깔나는 묵이 어머니 손에서 딸에게 전수되고 이렇게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은 손님들의 식탁에 올려진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본질을 가르치고 그 정성으로 올려진 음식은 그곳을 찾는 손님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한다.

험난한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든 과정이다. 1인 가구의 증가세가 이어지며 소통이 줄고 따뜻함을 전달받을 곳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성도들은 교회가 아닌 제2, 제3의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엔데믹 시대를 맞고도 여전히 온라인 예배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20~30대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불필요한 관계적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교회의 현재 상황도 비슷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 집으로 들어올 식구를 위해 따뜻한 밥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다. 개척교회는 이런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확실히 최적화 돼 있다. 아직 수가 적고 모이는 것이 어렵지 않을 때 따뜻한 식탁 교제를 준비해 자주 모일 수 있으면 참 좋다. 교회가 피난처가 돼야 한다.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따뜻한 피난처가 돼야 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절망을 나눌 수 있도록,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교회는 피난처가 돼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교회에서 밥상공동체를 세우고 나누며 따뜻한 피난처를 만들어 갈 때 가장 힘든 순간이 있다. 끝까지 받기만을 원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다. 함께 섬길 힘이 없고 육체·정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개척 초기에 찾아오신다. 30대에 서울에서 개척했을 때도 그랬다. 초기에 여러모로 사정이 안 좋으신 분들이 오셨다. 교회를 이끌어 가기도 힘든데 도와드려야 할 분들이 많았다.

나는 새벽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일꾼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매번 아프신 분들만 보내주십니까”라고 항의 기도를 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아픈 사람을 일꾼 만드는 게 목회’라는 말씀을 주셨다. 맞다. 진득하게 열심히 하다 보면, 그리고 세월이 좀 지나면 어느새 그분들이 변화되고 훈련을 받아 교회의 핵심 일꾼으로 변해 있다.

교회는 피난처다.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한 피난처다. 그 피난처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게 개척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기에 사실 그 피난처는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자신이다. 척박한 땅 위에 견고하게 서서 따뜻한 온기를 가진 피난처가 돼야 할 소명으로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게 노력하며 살면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피난처로 살아가야 한다. 교회가 이 땅에 희망이 되려면, 그리고 개척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래야 한다.

지치지 말자. 퍼주다가 섭섭함을 갖지 말자. 끝이 없어 보이는 섬김에도 열매는 따라온다. 회복이라는 단어의 힘을 쉽게 손에서 놓지 말고 오늘도 어김없이 내어주자. 길을 잃은 영혼을 위해 그리고 길을 걷기를 포기한 영혼을 위해 주께서 이 땅에 교회를 개척하신다. 작은 공동체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하고 그 과정에서 주의 은혜를 구한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 은혜로 피난처를 삼는다. 세상에 피난처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똑똑한 공동체보다 따뜻한 공동체를 추구하자. 많은 것을 알고 배우는 공동체보다 한 마디라도, 한 걸음이라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동체를 만들자. 성도들이 많아지는 것도 기쁘지만 성도 한 명이 그 따뜻함 속에서 회복되는 공동체를 세우자. 지금 섬기고 있는 공동체가 누구를 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을지 점검해보자. 지치고 힘들어하는 시대, 아프고 상처받은 시대에 주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여러분을 그곳에 심으셨다. 아직 땅속 씨앗처럼 잘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오늘도 피난처를 세우는 여러분을 응원한다.

라이트하우스무브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