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 속인 간 큰 횡령범, 회계사 출신 초임 女검사가 잡아냈다

입력 2023-06-19 04:08

회삿돈 횡령으로 재판을 받던 중 피해 회사 측에 빼돌린 돈을 변제한 것처럼 장부를 꾸며 집행유예를 받아낸 간 큰 피고인이 뒤늦게 조작 사실이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법원까지 기만한 범행 실체가 규명된 데는 회계사 출신 초임 여검사의 활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안양지청 인권·경제범죄전담부(부장검사 최재준)는 업무상 횡령 및 무고 혐의로 태양광 개발 관련 기업 직원 A씨(42)를 최근 구속 기소했다. A씨는 태양광발전소 부지를 사들여 시공한 뒤 계약자들에게 분양하는 업체에서 자금 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는 회사 계좌로 입금돼야 할 발전소 분양 대금 1억2000만원을 개인 계좌로 받은 혐의로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수사를 받게 되자 고소인들을 허위 사실로 고소해 무고 혐의도 더해졌다.

A씨는 1심 재판 첫 공판에서 범행을 자백하며 횡령금 변제를 마쳤다고 주장해 그대로 심리가 종결됐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후 피해금이 정말 변제됐는지 의심스럽다며 변론을 재개했다. A씨는 자기 돈으로 변제를 완료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계좌 출금 자료, 회계내역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를 확인하고 지난해 9월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와 검찰 모두 항소하지 않으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윤세희(31·변호사시험 10회) 검사는 이 사건 공판검사였다. 초임 검사인 그는 재판부가 피해 회복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재판을 재개한 것이 이례적이라고 생각하고 당시 상황을 기억해뒀다.

이후 같은 지청 수사 부서로 이동한 윤 검사에게 A씨에 대한 추가 고소 사건이 배당됐다. 회사 계좌로 부가가치세 환급금이 들어왔는데, A씨가 계좌 비밀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금액 확인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윤 검사는 A씨가 첫 번째 횡령 사건 당시 재판부에 냈던 계좌 자료와 회계내역서 등을 떠올려 해당 자료를 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회계사 출신인 윤 검사는 계좌 거래 내역과 실제 회계처리 내역이 다르다는 점을 찾아냈다. 이어 추가로 두 차례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세무자료 등을 분석한 끝에 A씨가 앞선 재판 당시 변제 내역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우선 회삿돈 1억3000만원을 동거녀 계좌로 보냈다가 자기 계좌로 보냈다. 이후 자기 계좌에 들어온 돈을 다시 회사 계좌로 보냈다. 그런데 1심 재판부에는 자기 계좌에서 회사 계좌로 1억3000만원이 이체된 거래 내역만 선별해 제출했다. 회삿돈으로 돌려막기 해놓고 자기 돈으로 피해금을 변제한 것처럼 외양만 갖춘 것이다. 그는 처음 회삿돈을 빼돌릴 때 가족이 아닌 동거녀 계좌로 보내 의심을 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 검사는 “A씨가 법원을 속이려 계좌 거래 내역도 꾸미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상당하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해 받아냈다. A씨는 결국 지난 9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