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처럼… 의료진 왕진·돌봄인력 가정방문할 수 있어야

입력 2023-06-19 18:01 수정 2023-06-19 18:01

40년 전 30대 초반에 1년간 영국 유학을 갔었다.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돌배기 딸아이가 심한 기침을 시작했다. 아직 운전도 못 하던 시절이라 왕진을 청해 보기로 했다. 책으로 공부하기를 영국에선 왕진을 해 준다는 구절이 기억난 것이다. 정말로 의사가 집으로 찾아오더니 걱정할 것 없다는 위로와 함께 처방전을 주고 갔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보니 필자도 잘 아는 흔한 약이어서 빙긋 웃었지만, 어쨌든 아이는 곧 회복됐다.

필자의 선친은 시골 의사셨다. 옛날 농촌에는 교통수단이 없었기에 걸을 수 없는 환자가 생기면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기 일쑤였다.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다니다가 60년대 중반에는 오토바이를 사셨다. 시대를 앞서가는 멋쟁이셨던 셈이다. 지금도 옛 친구들을 만나면 “너희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나를 살렸다”는 얘기를 종종 듣지만, 곤히 잠들었다 깨기 힘들어하시던 아버지의 기억에 가끔 눈물도 난다. 왕진은 어느 사이 사라져갔다. 그러다 2008년 새로운 방문이 출현했다. 일상생활 기능이 떨어진 노인을 요양보호사가 찾아가 수발을 들어주는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다. 노인과 가족이 매우 반겼다.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요긴한 제도였다.


만일 왕진이 되살아나서 방문 요양과 동시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어떨까? 중풍에 걸린 노인이라도 가정에서 진료와 수발을 받을 수 있다면 집에 오래 머물 수 있다. 사회복지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소득 문제, 가족 갈등을 풀어준다면 가족 부담이 덜어지고 ‘세 모녀 사건’ 같은 불행도 막을 수 있다.

간호사가 주기적으로 찾아 주고 작업·물리 치료사도 방문해 사라진 신체 기능을 되살려 주면 어떨까? 약사가 집으로 찾아가 약품을 정리하고 한의사가 집에서 침을 놓아주면 어떨까? 치과의사도 요즘은 가방 두 개 크기의 도구를 들고 가면 스케일링을 해줄 수 있다.

의료와 요양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많은 노인과 장애인은 의료와 사회 서비스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걷기가 불편하고 부엌일 하기 힘들어진 노인치고 병이 없는 이가 있을 리 없다. 가정 방문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된다면 노인을 집에서 편히 모시는 일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장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을 옛말로 만들어 보자.

김용익 (재)돌봄과미래 이사장,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