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향한 여야의 전쟁은
차악경쟁 양상…한심한 다툼
지켜보는 부동층 마음은 비전
제시하고 동의 구하는 곳 쏠려
대통령은 그 어떤 일방통행도
가능하다는, 국회 다수파면
입법은 뜻대로 된다는 건 착각
여야는 조선시대에도 그런 일
불가능했음을 상기해야
여야 간 전쟁이 조선시대만도
못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때
차악경쟁 양상…한심한 다툼
지켜보는 부동층 마음은 비전
제시하고 동의 구하는 곳 쏠려
대통령은 그 어떤 일방통행도
가능하다는, 국회 다수파면
입법은 뜻대로 된다는 건 착각
여야는 조선시대에도 그런 일
불가능했음을 상기해야
여야 간 전쟁이 조선시대만도
못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때
세종 12년(1430년) 호조에서 전답 1결(結)에 10말, 수확이 적은 평안도와 함길(함경)도는 7말을 징수하는 공법 시행을 건의하자 세종은 중앙과 지방관리, 일반 국민까지 찬반을 묻는 조사를 명했다. 5개월 뒤 호조는 17만여명이 응답해 찬성 9만8657명, 반대 7만4149명이라고 보고했다. 당시 인구 69만여명의 4분의 1이 참여한 사실상의 국민투표 또는 대규모 공론조사였다. 찬성이 많았지만 강원 평안 함경에선 반대가 많아 지역 편차가 컸다. 황희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 대부분도 반대했다. 세종은 공법안의 수정을 거듭하고 시범실시를 거쳐 14년 뒤에야 토지 비옥도와 한 해의 풍흉 작황을 반영한 전분 6등, 연분 9등의 공법을 제정했다.
조세제도 개혁은 예나 지금이나 공평하되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고 세종의 출발점도 거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고 이견을 수용해 동의의 기반을 넓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관리들의 재량권을 배제하고, 과세권의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는 개혁안에 대한 반발 세력을 설득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웠다. 과연 조선시대의 일, 옛날이야기일 뿐일까. 오히려 지금이 그보다 못한 것은 아닌가.
지금의 여야 관계는 마치 커다란 운동장에서 양쪽으로 갈라 줄다리기를 하는 양상이다. 사생결단으로 잡아당기면 자기편이 늘어날 것이란 착각 속에서. 아무리 애써도 지지층 결집은 딱 그만큼이다. 멀찌감치 떨어져 그 한심한 전쟁을 지켜보는 부동층의 마음은 어디로 향할까.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신당 이야기도 이들을 향한 몸짓일 것이다. 한데 그 층은 꽤 까다로운 이들이다. 어지간히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차라리 투표를 포기할지언정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일부는 여야 중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선지 지금 여야 간 전쟁은 차악 경쟁 양상까지 보인다. 야당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앞으로 더 큰 건이 나올 거라는 예고편까지 집권 세력은 상대가 더 나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렇게 칼을 휘두르는 게 결과적으로 야당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기소되는 숫자가 늘어나면 새로운 인물들의 공천 가능성이 커진다. 검찰의 칼이 야당의 물갈이, 즉 새 피의 수혈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얼마나 좋은 인물을 찾는가는 야당 몫이지만, 일단 새 사람은 시선을 모은다.
사실 이 경쟁은 원천적으로 여권에 불리하다. 내년 총선은 중간평가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평가받는 건 여당과 대통령이다. 잘하면 기본이고, 그보다 더 큰 지지를 받아 다수파가 되고자 한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명확한 비전 제시와 광범위한 동의를 얻으려는 노력이다. 대한민국 미래에 보탬이 될 것이란 신뢰와 지지가 있어야 여권에는 해볼 만한 선거가 된다. 야당과의 전쟁 중에 실종돼 버린 개혁과제를 가다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교육·연금개혁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지금 개혁은 없고 전쟁만 남아 있다. 선거까지 10개월. 아직 시간이 있고 대통령과 여당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헌신과 설득에 나서야 한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전쟁 대신 미래 비전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지지받기 어렵다.
세종에 대한 평가도 노비제도와 관련해선 엇갈린다. 노비제를 고착시켰고 노비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강력한 노비 규제 도입 주장을 해온 예조판서 허조가 태상왕 태종에게 읍소해 결국 관철시켰다는 반론도 있다. 노비제도 개악이나 14년이 걸린 조세개혁은 왕이라고 해서 신하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칠 수 없었고, 때론 사대부의 권한이 왕의 결정을 좌지우지했음을 보여준다. 왕이 높은 자리에서 신하들을 내려다보던 왕조 시대와 달리 지금은 대통령과 장관이 수평적인 한 테이블에 앉아 있다. 하지만 과연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가. 왕의 숨소리까지 적은 조선왕조실록만큼 정치한 기록은 존재하는가.
대통령의 권력이면 그 어떤 일방통행도 가능하다는 또는 국회 다수파면 입법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여야는 조선시대에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여야 간 전쟁이 조선시대만도 못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