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한·중 관계와 구조적 도전

입력 2023-06-19 04:02

한·중 관계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최근 한·중 관계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문제 핵심을 비켜난 채 소모적인 감정적 대립을 자극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중 관계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최근 한·중 관계 갈등의 이면에는 구조적 요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반면에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양국 관계의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심지어 양국 모두 관계 회복의 동기와 동력마저 약화되고 있다. 양국 간 갈등과 대립이 만성화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관리해야 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앞서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도 2014년 7월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국빈방문했다. 이렇게 한·중 관계는 2015년에 역대 최상의 관계라고 평가됐다. 그러나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드 갈등으로 최악의 관계로 급전직하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서의 중국 역할을 과잉 기대했다. 시 주석은 미·일 동맹의 중국 견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모색했었다. 한·중 관계가 2015년 최상의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전략적 동상이몽과 과잉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한·중 양국의 전략적 동상이몽의 민낯은 북한의 연이은 4차, 5차 핵실험으로 고스란히 노출됐다. 요컨대 사드 갈등은 한·중 관계가 미·중 세력 경쟁과 북핵이라는 외생 변수에 구조적으로 취약해졌음을 알리는 경고였다.

한·중 양국 국민들의 상호 부정적 인식이 고조되고 있는 원인을 추적해보면, 구조적 요인이 중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한·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한·중 양국 국민들의 상호 부정적 인식은 중국의 부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이후 이미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가파른 부상, 미·중 경쟁과 대립의 심화, 한·중 국력 격차의 확대 등 일련의 구조적 변화가 양국의 상호 부정적 인식에 영향을 미쳐 왔다.

최근에는 양국 체제와 가치의 간극마저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공감대는 약화되고 상대국 체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축소되고 있다. 체제와 가치에 대한 이질성으로 인해 악화된 양국 국민의 상호 인식이 역사 및 전통문화의 종주권 이슈를 자극하고 이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로 비화하면서 양국 간 부정적 정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의 청년 세대들은 환경 오염, 질병 확산 등 인접국 관계에서 초래되는 생활 안전에 민감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 의존성에 대한 저항 심리가 증대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 내에선 오히려 한국의 미국 경사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고조되는 상반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요컨대 한·중 국민들의 상호 부정적 정서는 국제 세력 구조의 변화, 체제와 가치의 간극 확대 그리고 지정학적 특수성 등 구조적 요인에 의해 고조되고 있으며 미래 세대로까지 이어지면서 고착화·장기화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한·중 양국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가 이뤄지는 특수한 관계다. 인접한 두 나라 모두 양국 관계가 만성적 갈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양국이 직면한 심각한 구조적 도전을 직시하고 소모적 감정 대립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양국 지성들의 각성과 연대가 절실한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과 중국이 갈등과 위기를 관리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다층적 대화 채널이 시급히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