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사태’ 보며 ‘혁신’ 고민
사회 희생 동반 아니라 시장 규모 키우는 진짜 혁신 필요
사회 희생 동반 아니라 시장 규모 키우는 진짜 혁신 필요
언론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혁신 타다’라는 단어가 관용어처럼 쓰였다. 또 ‘제2의 타다’라는 말은 규제가 혁신을 막아선 현상을 나타내는 신조어처럼 불린다. 최근 타다의 불법 콜택시 여부가 대법원 판결로 가려졌다. 정치권을 비롯해 스타트업 업계에서 ‘혁신 타다’의 좌초를 개탄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타다 사태’가 법정 다툼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지난 수년간의 재판은 타다가 혁신이었느냐 아니었느냐를 가리지 않았다. 타다가 불법적으로 콜택시 영업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졌다. 타다의 서비스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킨 혁신이었는지, 이를 정부나 정치권이 막아 혁신이 막혔는지, 규제로 인해 진짜 타다가 멈춰서야 했는지를 규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타다는 진정한 혁신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만 더욱 분명해졌다. 대법원은 타다에 대해 “기존에 허용된 적법한 영업 형태에 통신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라고 판시했다. 타다의 서비스는 기존에도 있었던 것이었고, IT 플랫폼의 성격만 더했을 뿐 새롭게 만들어진 신종 모빌리티 서비스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과거 타다가 등장해 기존 택시 산업을 IT 플랫폼 서비스로 한 단계 발전시키려고 시도한 것 자체를 넓게 보면 혁신이라고 볼 수는 있다. 타다는 타성에 빠져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택시 시장에 고급 서비스의 개념을 심어줬고, 고객 중심이라는 택시 기사들이 잊고 지내던 기본을 일깨우는 ‘시장 충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빌리티 플랫폼의 원류를 타고 올라가면 타다와 같은 성격의 서비스는 이미 존재했었다. 타다는 기존 서비스들이 좌초되자 당시 법의 경계지점을 노려 영업을 시도했었을 뿐이다. 타다는 세상의 첫 번째가 아니었다.
심지어 ‘타다의 혁신’은 ‘파괴적’이었다. 어떤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가 나온 이후 기존 산업과 충돌해 전방위적인 타격이 발생하거나 해당 산업 종사자들의 희생이 발생한다면, 그 서비스는 우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울에 올려야 한다. 희생이 불가피한, 시대적 변화의 한복판이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내는 것이 정부와 국회 등 ‘권력 기관’의 책임이다. 과도기 변화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타다 측이 스스로를 혁신이라고 칭하면서 택시 산업을 파괴하고, 시장 자체를 대체하려는 데 집중한 것을 혁신이라 여겨도 될지 조심스럽다. 타다와 타다를 이끈 경영진은 택시 기사들이 자신들로 인해 분신을 택하고 타다 드라이버들이 일자리를 일시에 잃어 임시 노동시장을 전전할 때, 일련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멀리했다. 도리어 “혁신을 막지 말라”고만 외쳤다. 자신들은 사회를 바꿀 절대적이고 선한 존재라 포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동안 택시 기사들은 무지하고 게을러 세상에서 도태된 낙오자가 됐고, 타다 드라이버들은 타다를 위해 정당한 노동을 했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타다는 시장의 확장이 아닌 시장 속 의자 뺏기에 열중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타다 사태를 보며 자라난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고 발전시키는 혁신이 아닌 사회의 파괴를 동반한 왜곡된 혁신만을 지향할까 두렵다. 사회 갈등이 이어지는 데도 스스로 혁신이라 끊임없이 강조하는 기업과 기업인이 많아질수록 사회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제2의 타다’는 반복해 나타날 것이다.
타다가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진짜 혁신은 시장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변화다. 타다 사태를 계기로 기업이나 기업인이 ‘무엇이 혁신인가’를 스스로 정하는 문화가 사라지길 바란다. ‘사회’와 ‘사회 구성원’ ‘시장의 반응’ ‘시장의 변화’ ‘방향성’ 등의 옳고 그름이 혁신의 기준으로 정착하길 바란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