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파업 참여 노동자의 불법행위 수준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판례를 내놓으면서 불법파업에 대한 회사 측 손해배상 소송이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계의 숙원인 ‘노란봉투법’을 사실상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반영한 판결이라는 해석이다. 사측의 소송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는 노동계 기대감과 불법파업이 확대될 수 있다는 재계 우려가 엇갈렸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연이어 ‘노조친화적’ 판결을 내놨다. 우선 2010년 11~12월 울산공장을 불법점거했던 조합원 관련 소송에서 불법파업에 따른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만, 책임의 정도는 조합원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또 다른 현대차 파업 사건에서는 “불법파업으로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이것이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기존 판례는 생산 감소가 곧 매출 감소 및 고정비용(제세공과금 등) 손해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르면 파업 후 추가 생산 등으로 부족한 생산량을 메꿔 매출 감소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고정비용을 손해로 볼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또 쌍용자동차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금속노조가 33억여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뒤집었다. 쌍용차가 파업 복귀자들에게 지급했던 18억8200만원은 파업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가 아니기 때문에 배상금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금속노조는 이자를 포함해 100억원가량을 배상해야 했었는데 이날 판결로 총배상액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불법파업 행위에 대한 손배소를 제한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법무법인 화우 오태환 변호사는 “회사에서 조합원별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이 끼친 손해를 따로 산정하자는 것은 진일보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노동단체와 경제단체 입장은 엇갈렸다. 한국노총은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소 폭탄에 제동을 건 판결을 환영한다”며 “정부·여당은 신속히 노란봉투법을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회사 측이 조합원 불법행위를 파악하라는 건 손배소를 원천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산업현장에서 유사한 불법행위들이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법원 관계자는 “조합원 측이 ‘내 가담은 적었다’는 자료를 내야 할 수도 있어서 기업 부담이 일방적으로 늘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회사가 각 가담자의 역할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해 소송이 많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성원 이형민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