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유사사건, 노조 손 들어준 대법

입력 2023-06-16 04:09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15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불법파업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노동자 측 손을 들어줬다. 불법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경우 개개인의 가담 정도에 따라 책임 비율도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쟁점 조항의 입법 취지와 유사하다.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이 입법되지 않더라도 사실상 비슷한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차가 2010년 공장 점거에 참여한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조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관여한 정도는 개별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과 위법한 쟁의를 결정·주도한 노조의 배상 책임을 동일하게 보는 건 헌법으로 보장된 근로자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사측이 정규직 전환 요구를 거부하자 2010년 11월 15일~12월 9일 울산공장 1·2라인을 점거했다. 현대차는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보았다며 조합원 29명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현대차 청구를 전액 받아들여 노동자들이 20억원을 공동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는 이후 정규직 전환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이들에 대해선 소송을 취하했다. 2심은 현대차 전체 손해금(271억원) 중 노조와 조합원 측 책임을 50%로 제한하면서 조합원 4명이 20억원을 공동 배상하라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조와 조합원들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건 불합리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 책임 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 기여도를 종합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업과 관련해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는 판례는 처음이다.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노란봉투법 조항과 비슷하다.

법무법인 화우 오태환 변호사는 “위법 쟁의 연루 조합원들 각자의 구체적 역할과 가담도를 일일이 따져 책임을 묻는 일은 실무적으로 소송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제한하자는 노란봉투법 취지와 마찬가지로 소송 청구 자체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