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애플도 어려운 脫중국

입력 2023-06-16 04:10

애플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혁신의 대명사이자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다. 3조 달러를 넘보는 시가총액은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1위다. 2022년 말 기준 영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 전체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맥북,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이 내놓은 제품은 그때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떠난 뒤에도 여전한 애플의 경쟁력은 글로벌 분업화에 있다. 제품 설계와 디자인은 미국의 애플 본사에서 하지만 제조와 조립은 비용이 낮은 대만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 맡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한층 격해진 미·중 갈등 이후 애플도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탈중국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동안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애플이 최근 발표한 신제품 ‘비전프로’를 보면 애플의 탈중국 전략이 얼마나 어려운 지 잘 보여준다. 애플이 이달 5일 세계 발표자 대회에서 공개한 비전프로는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제품이다. 애플은 이 제품을 새로운 공간 컴퓨팅이라고 마케팅하고 있는데 기존 AR(증강현실) 헤드셋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장의 초기 반응은 기대와 실망이 반반이다. 뛰어난 사용자 직관성과 세련된 디자인은 역시 애플답다는 찬사를 낳았지만 450만~500만원에 이르는 판매가격은 지나치게 높다는 반응이다. 애플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이 제품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제품 출시는 내년 1월이다.

그런데 애플 비전프로를 구성하는 부품 중 절반에 가까운 8개가 중국 기업에서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도 부품공급업체에 포함됐고 대만 기업이 납품한 부품이 11개로 절반이 넘었지만, 카메라 모듈과 배터리 등 적지 않은 핵심 부품은 중국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었다. 삼성과 SK 등 한국 기업들은 중국 소재 반도체 공장 업그레이드조차 미국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데 애플의 행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