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놓고 한국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시장 예상에 대체로 들어맞는 동결 결정을 내리면서도 ‘잠시 멈췄지만 다시 올릴 수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던진 탓이다. 한은으로선 현재 1.75% 포인트 차로 벌어져 있는 한·미 기준금리 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다음 달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기도 부담스럽다. 장기화한 경기둔화 국면과 여전히 꺼지지 않은 물가 상승세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15일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연준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 등을 통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부인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높은 상태”라며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이기 위한 동결 결정이었다고 강조한 대목을 언급한 것이다.
연준이 이날 공개한 점도표(dot plot)에 따르면 연준은 연말까지 한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까지 연준이 두 차례 0.25% 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한 차례만 0.5% 포인트 올리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만약 한은이 동결 기조를 유지한 상황에서 미국이 한 차례 0.25% 포인트 인상만 단행하더라도 한·미 기준금리 차는 역대 최대인 2% 포인트로 벌어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한·미) 금리 격차라는 프레임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불안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한·미 기준금리 차가 커지면서 국내 외국인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지는 데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 상승은 물가상승 압력을 다시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한은이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여전히 뚜렷하지 않은 데다 15개월째 적자를 기록 중인 무역수지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 위험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언급하면서 “정부는 높은 경계심을 갖고 국내외 금융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