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출석하지도 않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이 원장은 동남아시아에서 진행된 해외 투자설명회(IR) 행사에 참석하던 중이었다. 백혜련 정무위원장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조작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장이 해외 IR 참석을 이유로 전체회의에 나오지 않은 것은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정무위원은 “금감원은 지금 IR을 같이 나가 있는 금융지주사를 감독하는 기관”이라며 “몇 박 며칠 동안 같이 나가서 우애를 다지고 돈독히 하면 감독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 간 부적절한 관계 형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금감원이 최근 이 원장을 포함한 임직원의 해외출장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취지의 국민일보 기사에 대해 “출장 관련 예산은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금감원의 해외출장비 지급 기준을 공개하고 있고 금융위원회의 결산 심사와 감사원의 정기감사를 통해 집행 내역이 철저하게 검증받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해외출장비 내역을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는데 공개 여부와 상관없이 투명하게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는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
물론 금융사들이 낸 감독분담금이 예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금감원 특성상 정부 부처 수준의 투명성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투명한 예산 집행과 검증’이라는 금감원 항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감사원이 지난 4월 공개한 금감원 정기감사 결과에 나타난 몇몇 적발 사례만 봐도 그렇다. 금감원은 2016년 퇴직하는 달에 하루만 근무한 A씨에게 한 달 치 월급 1214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5∼2021년 퇴직하는 달에 15일 미만 근무한 A씨 등 199명에게 15억여원의 보수가 과다지급됐다. 금감원은 2017~2021년 경영전문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등을 밟은 연수생 55명에게 3억3300여만원의 등록금뿐 아니라 자치회비 1억여원을 함께 지원했다. 자치회비는 골프모임비, 졸업여행비, 경조사비, 명절선물비 등이었다. 직원 위탁교육비에 사적 비용까지 얹어준 것이다. 지자체에 파견됐던 직원은 업무추진비 카드를 아내에게 쓰도록 해 식당 등에서 120만원을 쓴 사실이 적발됐다.
번번이 예산 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금감원이 감사원 감사와 금융위 심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투명한 예산 집행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감사원은 감사 보고서에서 “금융위는 금감원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편성·집행하도록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지도·감독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도 이번 감사원 감사 전까지 이를 지도·감독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2017년 감사 결과 발표 때는 “금감원의 방만 경영이 심화되고 금융기관의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면서 통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감원이 유독 해외출장비만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만약 예외적으로 투명한 예산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면, 해외출장비 내역을 공개하면 될 일이다. 금감원 측은 이 원장 등의 해외출장비 내역을 제출해 달라는 국회 한 의원실을 찾아 “비공개는 관례”라고 요청하며 끝까지 공개를 막았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철저하게 검증받고 있다는 입장을 밝힐 수 있을까. 재정 당국뿐 아니라 국회의 감시까지 벗어난 금감원 예산에 대한 모니터링은 강화돼야 한다. 2800억원 규모의 민간 금융사 돈으로 사실상 꾸려지는 금감원 예산 관리에 구멍이 커지면 그 피해는 결국 다수의 일반 금융소비자들에게 떠넘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