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사랑이 있었던 10년
그들 덕분에 바뀐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그들 덕분에 바뀐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최근 지인들과 대화하며 ‘그게 벌써 10년 전이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슬펐다. 반들반들 갈고 닦인 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습관성 리액션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그 일’이 ‘10년 전’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소식을 처음 들은 귀도, 뒤이어 전달받은 뇌도, 옆에서 조용히 엿듣고 있던 동공도 각자의 최선을 다해 소스라치게 놀랐다. 실제 체감이 그랬다. 먼 곳을 바라보며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아스라한 표정을 짓게 되면 10년, 엊그제 같으면 2~3년 전 일인 경우가 허다했다.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심해진다고들 하던데, 아직 거기까지 짐작해 미리 놀라고 싶지는 않다.
지난 13일 그룹 BTS가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BTS의 데뷔를 전후해 남산서울타워에서 DDP, 세빛섬, 서울시청, 광화문광장, 롯데월드타워, 반포·양화·영동·월드컵대교까지 서울 곳곳에 위치한 랜드마크가 보랏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보라색은 BTS와 그들의 팬덤 아미 사이에서 사랑을 뜻하는 색채 언어다. BTS의 활동을 느슨하게라도 따라온 이들이라면 크게 낯설 풍경은 아니다. 보라색은 이미 수년간 BTS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세계 곳곳을 물들여 왔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등 세계 곳곳을 대표하는 상징물들이 보랏빛을 입었다. 각 도시가 BTS에 전하는 환영의 메시지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에 사는 데다 음악 이야기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BTS의 10주년 덕분에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나눈 분들도 많았다. 머쓱한 인사 뒤 이어진 건 예상대로 가요계에서 BTS의 위치, BTS 10주년의 의미, BTS의 대표작 같은 질문들이었다. 더러는 기사 작성 시간이 지나 답변을 전달하지 못한 채 대화가 흐지부지 마무리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BTS와 10주년이라는 중요한 시그널을 주고받기에는 부족함 없는 교류였다. 직접 진행하거나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는 음악이나 K팝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BTS 관련 특집이 마련됐다. BTS의 10년 돌아보기, 출연자 각자가 뽑은 BTS 명곡, 개인 취향을 듬뿍 담은 BTS 플레이리스트 등. 그렇게 BTS와 관련된 이야기와 노래를 집중적으로 나누던 가운데 무언가 쿵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BTS라는 이름이 가진 크기와 무게였다.
조금 놀랐다. 10주년이란 게 대단하구나 싶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찾고 마음껏 이야기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즐겁게 살아가고 있기에 오히려 그것이 일이 됐을 때 의식적으로 더욱 브레이크를 거는 유형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자극의 강도가 강할수록 차분한 머리와 정돈된 언어가 필요했다. 때로 그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부른다 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작업 기준이었다.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안전장치였다.
생각해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룹 BTS를 이야기해 온 지난 10년도 늘 그랬다. 흔히 말하는 ‘국뽕’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사실 너머를 섣불리 짐작해 축소하거나 과장해 전달하고 싶지도 않았다. 열광하는 이들과 의문을 품은 이들 사이에서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다리를 놓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 아래 음악과 사랑이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마음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 나름의 성공과 초라한 실패를 거듭해 오며 BTS의 10년에 닿았다. ‘그게 벌써 10년이나 됐어?’라는 말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온다. 10년에 발맞춰 변해온 BTS를, K팝을, 한국 대중음악계를, 지구 어딘가 BTS 덕분에 바뀐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어딘가 아득해지는 기분에 쿵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구나 싶어진다. 묵직한 ‘벌써 10년’을 딛고, BTS의 새로운 10년이 시작됐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