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넘는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이제일(40) 목사의 첫인상이다. 그러나 몇 분만 대화를 나눠보면 그럴듯한 외모는 잊히고 선교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재적 성도 1000명의 제법 큰 교회가 아날로그 방송 해상도의 미디어 시설 장비를 최근에야 업그레이드한 이유도 코로나 시국에 미자립교회나 선교지 후원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2일 인천 남동구 인천제일감리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우리 교회가 선교에 더욱 진심이 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패기 넘치던 20대, 유학 중 교회 개척
이 목사는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인천제일감리교회를 설립 때부터 이끌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규학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이다. 목회자 삶의 무게감을 가까이 지켜봤기에 그는 목사를 꿈꾸지 않았다. 대신 신학대 교수를 목표 삼고 미국 시카고의 게렛신학대로 유학길에 올랐다.
신앙 가문의 영향일까. 그는 20대 후반 자연스레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 유학생 큐티(QT·경건의 시간) 모임의 12명과 학교 채플실을 빌려 예배를 드린 것이 계기였다. 이 목사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서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이는구나 하는 착각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가정집에서 시카고제일교회를 개척하면서 그 마음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합지졸 가정교회서 유학생들 변화
2011년 1월 교회 창립 예배에 이 목사와 사모, 전도사 3명만 참석했다. 졸업과 취업으로 교회 설립 멤버는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장인어른이 축하 화환을 보내주셨는데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른다”며 “내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살림집이자 예배당이던 이 목사의 교회엔 ‘밥이 맛있다’는 소문에 금세 유학생이 모였다. 이 목사는 밥값을 대려고 가발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미국 명문대 학부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사모도 입시 학원에 나갔다. 당시 대형 교회에서 목회하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교회는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30명이 모인 예배에 60달러 정도 헌금이 모였는데, 이중 50달러는 이 목사 부부가 낸 것이었다. 신앙 훈련의 절실함을 느낀 이 목사는 군시절 조교 경험을 살려 유학생 성도들의 태도부터 신앙까지 돌봤다. 평일에 일하면서 고단했던 이 목사는 학생들과 둘러앉아 말없이 졸았던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술에 절어 살던 학생이 장학금을 받거나, 게임 중독자가 교회 봉사에 참여하는 등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서 다시 한국으로… 부흥 이끌어
이 목사는 성도가 100명이 넘어 가정집에서 예배당 건물로 나와 목회하던 2013년쯤 한국에서 청빙 제안을 받았다. 미국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고 치대에 입학해 공부하던 아내와 기약 없는 이별도 걱정되던 터라 한국행이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단으로 무너진 인천의 한 교회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이 목사는 뿌리치지 못했다. 이 목사는 “영광스러웠지만 버거운 자리였고 아버지 명성 탓에 비판도 들려오던 터라 걱정이 많았다”며 “실제로 한국 목회 시작 3년 간 교인이 떠나가는 등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2014년, 서른을 갓 넘긴 이 목사는 교인 90명으로 한국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일종의 보험처럼 여기던 미국 영주권도 포기하면서 목회에 매진했다. 교회는 젊은 목사와 발을 맞추며 현재 재적 성도 1000명으로 늘었다.
이 목사는 “성도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하나님 앞에서도 더 진실하게 서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해 송구영신 예배 당시 코로나로 지친 성도를 위해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7번에 걸쳐 300명에게 안수 기도를 한 일화는 성도 사이에서 유명하다.
선교에 목숨 건 이유
이 목사는 인천제일감리교회 부흥 원동력을 선교로 꼽았다. 그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사명이자 교회 존재의 목적은 선교”라고 강조한다. 전 세계에 100개 교회를 세운다는 비전도 그 맥락이다. 지금까지 시카고제일교회를 포함해 캄보디아 인도 일본 우간다 등에 6개 교회를 설립했다. 이 목사는 “앞으로 94개밖에 안 남았다”며 웃었다.
교회는 모든 성도에게 크고 작은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추수감사절에 과일을 가져와 실천하는 기부도 그런 의미다. 인근 식당에서 후원받은 고기 등을 추가해 100상자의 먹거리 꾸러미를 만들어 주변 복지관에 전달한다.
이 목사는 ‘비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미자립 교회도 돕고 있다. 지금까지 150여곳과 함께했다. 재정 후원도 있지만 인적 네트워크나 행정 시스템을 공유한다. 이 목사는 “목사님들이 투잡을 뛰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저도 미국 목회 초기에 주변 도움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교회는 목회자 모임을 통해 의료 시설이 열악한 아프리카 선교사를 위한 의료 관련 후원도 하고 있다.
인천제일감리교회는 예배당의 방송·음향 시설을 최근 업그레이드했다. 주변에선 코로나로 대면 예배가 멈췄을 때 공사하지 않았냐며 의아해한다. 아날로그 방송 화질밖에 안 되는 미디어 설비에 대한 문제 인식은 수년 전부터 나왔지만 미자립 교회 돕기와 해외 선교 등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 목사는 “전 세계 오지나 작은 교회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의 삶을 갈아 넣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을 돕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천=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