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세상이 애타게 찾는 교회

입력 2023-06-16 04:02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영적인 집이며 학교이고 일터 같은 곳이다. 교회를 통해 쉼과 힘을 얻기도 하고, 평생 배우며 성장하고, 복음의 사역을 알차게 감당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교회에 대한 이해, 교회론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다양한 이론과 해석이 있다. 그만큼 교회는 시대와 상황에 맞는 삶을 살아왔다.

교회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고 그 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일일이 손에 꼽을 수도 없다. 물론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이고 세상 한복판에 존재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다.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부정하거나 달리 말할 수는 없다. 교회는 예수께서 주신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교회를 시작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음은 오롯이 하나님의 은혜다. 모든 교회가 그렇겠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다. 교회와 신앙을 어떻게 고백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가? 교회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찰과 목회와 신앙에 있어 단단함과 겸손함을 지켜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교회가 어디에 있든지 교회다워지는 것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게 아닌 예수의 공생애 사역에서 쉽게 보고 얻을 수 있는 은혜였다.

먼저는 교회가 수와 크기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무리 수가 많든 적든 그것이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인 수가 적어도 얼마든지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고, 아무리 많고 커도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겸손함을 갖는 것이다. 주님에게서 수와 크기를 볼 수 있는가. 오히려 피하셨고 돌려보내셨다. 교회가 본질을 벗어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수와 크기에 연연하는 것이다. 수와 크기의 올무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수와 크기의 유혹에 빠진 우리에게 주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말씀하셨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감히 왜곡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각자에게 물어보라. 무엇과 비교되며 바꿀 수 있겠는가. 주님이 생각한 수와 크기는 ‘하나님의 나라’일 것이다.

다음은 무명의 삶으로 나를 넘어서야 한다. 교회든 신앙이든 그래야만 한다. 시작은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바뀌고 달라진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당신의 자랑과 인기에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을 강조하셨고, 뜻을 이루심에 최선을 다하셨다.

교회와 신앙은 세상과 사람으로의 인정과 유명세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니….’(요 3:30) 요한은 말했다. “나를 따르려거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유명해지고 높임 받는 것만 이겨낼 수 있다면 교회와 신앙은 실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부추기고 자랑하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결국 세상의 논리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수와 크기, 유명세를 부정하면 교회와 신앙은 무엇을 지향하며 뜻을 세울 수 있는가. 그것은 생명을 향한 목마름이다. 예수의 관심은 오롯이 생명이었다. 교회와 신앙의 핵심은 물질의 축복이나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생명이요 영생이다. 생명을 능가할 다른 것은 없다.

생명(生命)은 ‘살라는 명령’이다. 그 살라는 명령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죄가 된다. 생명은 단지 목숨만이 아니다. 생명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존재이며 관계요 온 삶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는 통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 그 안에 살고 있음을 고백한다. 세상이 애타게 찾는 교회가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갈 것이다.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목사